쉬는 시간 고작 10분…쉴 틈 없이 배우느라 모른다, 놀 줄을

머니투데이 진달래 기자, 방윤영 기자 | 2017.10.19 06:00

[놀이가 미래다2- 초등학교 시간표를 바꾸자①-1] '놀이'가 배제된 학교 현실

편집자주 | "중요한 줄 알아도 시간이 없다." 아동 놀이의 중요성을 집중 조명한 머니투데이 '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 기획기사를 접하고 많은 부모들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아이들이 빼앗긴 시간을 돌려주려면 결국 교육시스템이 움직여야 한다. 성장의 중요한 열쇠인 놀이를 보장하기 위해 학교부터 놀이를 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그 첫걸음으로 초등학교 시간표부터 바꾸자는 제안이다.

"쉬는 시간 10분일 때요? 화장실밖에 못 가요. 쉬는 시간이 늘면서 친구들이랑 놀 수 있어요." (홍은택, 유현초5)

초등학교 쉬는 시간은 '쉼' 이상이 없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다음 수업 준비물을 꺼내다 보면 수업 종이 울린다. 다른 교실로 이동해서 수업을 듣는 경우에는 복도를 걷는 데 쉬는 시간을 모두 뺏긴다.

머니투데이가 '놀이가 미래다2' 기획기사를 위해 초등학생 4~6학년 100명(4개 초등학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초등학생이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놀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계 등 전문가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내에 놀이 시간이 없는 현실에서 비롯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 급식 적게 받는 이유? "빨리 먹고 놀고 싶어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뿐이다. 학교별로 40~50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아이들은 밥을 먹고 놀고 5교시 준비까지 해야 한다. 근로자에게 보장된 점심 휴게 시간(1시간)보다 짧다.

결국 밥을 일부러 적게 먹는 아이들마저 생긴다. 김태은 서울 은빛초 교사(창의인성팀장)는 10분 쉬는 시간만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제도에서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놀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사는 "10분 쉬는 시간만으로는 '논다'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며 "쉬는 시간이 10분뿐인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밥을 5분 안에 먹고 나가 노는 식인데 빨리 먹고 놀려고 일부러 급식을 적게 받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부족한 놀이시간에 아이들이 밥마저 포기하는 셈이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 한선희씨(가명·39)는 "놀지 못하다 보니 노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이 됐다"고 말한다. 한씨는 "수학여행 가서 아이들끼리 놀라고 하니 오히려 불안해 하며 ‘뭘 해야 돼요?’라고 묻더라"고 말했다.

매주 화·목요일 방과 후 놀이를 지원하는 '은빛골목놀이터'는 1학기 초 100명 가까운 학생이 참가신청을 하는데 2학기가 되면 그 수가 절반이 된다. 은빛초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이 놀이터를 찾는 학생은 하루에 많으면 20~30명이다.

국내 초등학생들의 놀이시간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1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의 사교육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며 아이들의 놀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고 이와 관련 공교육 개선 노력을 권고했다. 우리 정부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지만 여전히 국제적 수준에 못 미친다.



◇ 초등생 4명 중 1명, 놀이 '하루 1시간 이하'…학교 내 놀이시간 없어

머니투데이가 실시한 설문조사(4개 초등학교 4~6학년생 100명 대상) 결과에도 이런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학교가 끝난 뒤 노는 시간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23%가 1시간 이하로 답했다. '2시간'으로 답한 학생이 21%였다.

3시간 이상을 답한 경우도 대부분 IT(정보기술)기기에 의존했다. PC와 스마트폰을 한다고 답한 학생이 각각 30명, 28명이었다. 놀이터에서 논다는 학생은 8명에 불과했다. 놀이의 양은 물론 질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초등학생의 '놀고 싶다'는 마음은 컸다. 학생 10명 중 7명은 노는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1~2시간만이라도 더 놀고 싶다고 답한 비율이 68%를 자치했다.


일주일에 3번 국·영·수 보습학원에 다니는 김단하양(은빛초 2학년)은 "학원에 가지 않고 매일 오후 5시까지 놀고 싶다"며 "학원 가지 않는 날에도 놀이터에 친구들이 없어 학교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초등학생의 놀이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연구Ⅳ'에 따르면 초등학생 평일 여가 시간이 3시간 이상인 경우가 35%에 그쳤다. 2015년에는 40.2%였던 비중이 더 줄어들었다.

반면에 방과 후 평균 3시간 이상 학습하는 초등학생은 2013년 28.9%에서 지난해 47.5%까지 증가했다. 이는 평균 3시간 이상 공부하는 중학생 비중(47.4%)과 비슷한 수준이다.

김영지 선임연구위원은 "초등학생이 가장 학업부담이 낮고 여가 놀이 활동이 다양해야 하는데 발달권을 저해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학교 부적응, 학업중단, 학교폭력, 자살 등과 연관돼 정상적 성장과 발달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 "학교가 놀이 시간 보장에 앞장서야"

학교 현장과 학계 등에서는 점차 학교가 놀이를 안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다. 성장과 놀이는 뗄 수 없는 관계로 학교가 당연히 놀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2교시 쉬는 시간을 20, 30분으로 늘려 '놀이시간'으로 만드는 학교가 늘고 방과 후 '놀이시간'을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 은빛초등학교는 2011년 개교 이래 7년간 30분 중간놀이시간을 운영 중이다.

이윤희 은빛초 교감은 "2011년 2월 개교 준비할 때 모든 교사들이 모여 어떤 어린이 상을 추구할지 고민하다 '충분히 놀게 하자'고 결론 냈다"며 "'건강하게 논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란다', '충분히 논 아이들이 학습능력도 좋다'는 철학을 정했다"고 말했다. 개교 전 이런 철학을 들은 학부모들은 '꿈꾸던 학교'라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놀이시간을 운영해 본 교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서울 남부교육청 산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9년 차 교사 한소현씨(가명)는 "20분 중간놀이시간만 해도 도움이 된다"며 "땀을 뻘뻘 흘리고 오면 수업이 오히려 잘된다"고 말했다. 땀 빼고 나면 지치거나 산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반대다.

머니투데이 설문조사에서도 중간놀이시간이 생긴 뒤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답한 학생은 62%,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졌다'는 답변이 62%를 차지했다. 학생 10명 중 6명은 '중간놀이 시간 때문에 학교생활이 즐거워졌다'고 답했다.

중간놀이시간에는 몸을 움직여 노는 활동도 상대적으로 많이 한다. 밖에서 운동이나 술래잡기·다방구 등을 한다고 답한 학생은 44%로 가장 많았다. 보드게임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는 학생도 24%였다.

안민규군(연천초3)도 "놀이시간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며 "친구끼리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쉬면서 노는 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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