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 국회 '기업감사'가 두려운 이유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부국장 겸 산업부장 | 2017.10.13 03:59
2년 전 가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엉뚱하게도 ‘한국어 실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의 어눌한 일본식 억양의 한국말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렸다. 결과적으로 “반성합니다, 죄송합니다, 개선하겠습니다” 등의 짧은 멘트와 공손한 자세로 잘 커버했지만 ‘국정감사의 수준’에 대해서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어디를 응원할 것인지 묻는 수준 낮은 의원, 일단 기업인들을 불러놓고 질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수준 자체가 없는 의원들이 싸늘한 눈총을 받았다.

당시 신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은 10대 그룹 총수 중 처음이란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다른 대기업 총수들은 국회에서 부르면 출장, 와병 등의 사유를 만들어 불참하면 그만이었다. 의원들에게 야단을 좀 맞고 때로 국회법에 따른 처벌을 받기도 하지만 대관 담당자들이 사후적으로 잘 처리하면 큰 문제가 없었다. 한쪽에선 누구를 부르느니 마느니 논쟁을 벌이고, 다른 쪽에선 애초부터 굳이 갈 생각이 없는 기묘한 상황이 반복돼온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정감사 때마다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부르는 데 대한 비판은 이제 고루하다.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증인채택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진부하다.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재계의 반복되는 항변도 언제부터인가 별로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어차피 가서 하루종일 대기하다 잠깐 불려나가거나 그냥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머쓱하게 되돌아오는 풍경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4년간 국정감사에 출석한 기업인 10명 중 8명은 답변시간이 5분을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렇게 한쪽에선 무더기로 부르고, 다른 편에선 국정감사를 해야지 왜 ‘기업감사’를 하느냐고 따져묻는 상황이 이어질 것인가.

올 추석에도 긴 연휴를 잘 쉬었냐는 안부를 전할 때 “국정감사 때문에 일하는 연휴였다”는 답이 의외로 많았다. 불려가는 회장님, 사장님이야 가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교육을 잘 받으면 되지만 실무진들은 준비해야 할 게 하나둘이 아니다. 일단 증인으로 불려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막상 끌려가게 되면 가급적 날카로운 질문을 하지 않거나 슬며시 내버려두도록 치열한 로비와 읍소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관 담당자들은 평소에도 여의도를 오가며 친분을 쌓고 민원을 해결해주면서 ‘따뜻한 무관심’을 부르짖는다. 국정감사 시즌이 시작되면 그 횟수와 강도는 당연히 많아지고 커진다.

올해도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 허진수 GS칼텍스 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이상운 효성 부회장, 장동현 SK 사장, 황창규 KT 회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 이해진 네이버 전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 재계 CEO(최고경영자)가 줄줄이 국감에 불려나간다.

전례만 놓고 보면 크게 사고를 친 일부 기업을 제외하곤 굳이 출석을 기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수준 낮은 질문에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최대한 간략하게 추상적으로 답하거나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가 돌아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계 대관 담당 임원들은 여전히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여론에 민감한 의원님들이 언제부터인가 국정과 기업경영을 같이 묶어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인터넷 여론까지 득세하면서 질문도, 댓글도 말초적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2년 전 신 회장의 한국어 실력이 화제가 됐듯이 자칫 실수라도 하면 핵심 국정이슈와는 상관없는 엉뚱한 이슈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두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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