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듣는 옛날 노래들

조하나, 강명석, 랩몬스터, 허항, 김세정 ize 기자 | 2017.10.11 09:03
가을, 모두가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가질 법한 계절. 그들 중 누군가에게 플레이리스트의 한 곡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옛날 노래들로.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서태지와 아이들의 세상이었고, 나는 어렸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취기가 얹힌 날이면 가사를 뭉개며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였다. 어릴 적 그 장면이, 그리고 그 멜로디가 잊힐 즈음 나는 어른이 되었다. 나이가 들며 순간의 반짝임 대신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가치에 대해, 내가 여태 겹겹이 쌓아온, 또 쌓아가고 있는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이 많아질 때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반백의 노신사가 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비로소 찬찬히 가사를 되뇐다.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가수가 시간 앞에 무너져 방황하던 마흔 중반에 설거지하는 아내를 보며 썼다는 ‘낭만에 대하여’는 다시 한 번 그를 음악으로 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노래는, 송창식은 송창식, 조용필은 조용필, 한대수는 한대수, 김민기는 김민기였던, 가수의 이름이 곧 나이테였던, 자신이 살아온 인생대로 노래를,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노래를 ‘기술’로 짓고 부르는 것이 아닌 시절이 분명 있었다고 말한다. 세월이 흐르며 잃어가는 것 또한 서글프지만, 인생이며, 그것 또한 낭만이리라, 그리고 낭만은 언제고 다시 살아나리라, 이 노래는 말한다.
글. 조하나(칼럼니스트)

Eve, The Apple of My Eye - Bell X1
작년 여름 마련한 집의 오디오룸에는 한쪽에 창문이 크게 나 있다. 하지만 봄여름에는 그 창으로 그리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집 주변의 공원에 심어놓은 나무의 나뭇잎이 자라 햇빛을 가리기 때문이다. 볕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은 나뭇잎이 떨어지는 늦가을부터다. 나뭇잎이 하나둘씩 떨어지면서 점점 더 빛이 들어오는 광경은 개인적으로 새로운 가을의 이미지가 됐다. 나뭇가지가 앙상해질수록 점점 더 환한 빛이 들어오는, 스산하지만 묘하게 온기를 품은 그 시기. 작년 가을에 Bell X1의 ‘Eve, The Apple of My Eye’를 다시 들은 건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미국 드라마 ‘The O.C’에 등장한 것(https://youtu.be/g2-L7WkBlhY)을 기억하는 사람들 외에는 앞으로도 그리 알려질 일 없을 것 같은 이 노래는, 전주부터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겠다는 각오마저 느껴질 만큼 처연하면서도 묘하게 낭만적인 무드가 깔려 있다. 그래도, 모든 것이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느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 노래는 새 집의 창 밖 풍경과 함께 다시 가을의 이미지가 되었다. 올해도 어느 일요일 오후에 오디오룸에서 담요를 덮고, 차를 한 잔 마시며 이 음악을 듣다 잠이 들겠지.
글. 강명석(ize 편집장)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유재하
가을 하면 적당히 들뜨고, 동시에 차분한 기분이 된다.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를 그래서 연습생 때부터 참 많이 들었었다. 전주부터 푸르고 높은 하늘과 약간의 구름,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그려지는 노래니까. 하지만 봄도 여름도 겨울도 아닌 가을에 들어야 하는 곡이라면,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다. 많은 것들 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이 계절에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시보다 더 시 같은 노랫말들로 어느 한순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만약 지금, 가을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듣게 될 것 같다.

글. 랩몬스터(보이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Tell Me Where You’re Going - Silje Nergaard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부터 난감해지는 이 낯선 여가수 ‘실예 네가드’는, 낯선 나라 노르웨이의 중견 재즈 디바다. 거장 기타리스트 펫 매스니가 곡 작업 및 연주를 맡은 이 곡은 그의 1989년 데뷔곡. 제목 그대로 “당신이 어딜 가는지 얘기해주면 나도 함께 갈게요”라는, 순수하고 예쁜 고백을 담고 있는 러브송이다. 제목만큼 밝은 비트와 희망적인 가사 속에, 우리가 ‘북유럽’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느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량함, 자연, 낭만, 낯섦, 오묘함, 그 모든 심상들이, 당시 스물을 갓 넘긴 여가수의 풋풋한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 듣고만 있어도 행복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가을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쓸쓸한 노래 사이에, 이 노래를 살짝 끼워 넣어보길 권한다. 노르웨이, 덴마크, 혹은 아이슬란드 같은 낯선 나라의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대자연 속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듯한 판타지를 선물해줄 노래. 노련하고 경쾌하게 곡의 대단원을 맺는 팻 메스니 기타 연주의 전율은 덤.
글. 허항 (MBC ‘쇼음악중심’ PD)

달팽이 - 패닉
이 곡은 내가 태어나기 한 해 전에 발표된 노래다. 그래서일까. 가을에 어울리는 잔잔하고 따스한 곡이면서도,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조그맣고, 또 조그맸던 나를 반겨준 노래처럼 느껴진다. 또 내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로 채워진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 여전히 즐겨 듣는다. 물론 유명한 곡이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겠지만, 고민에 빠져서 막막한 기분이 들 때 플레이하면 매번 색다른 답을 내준다. 가을 바람에 싱숭생숭하고 답답한 일이 떠오르는 분들이라면, 조용한 곳에서 한 번씩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글. 김세정(걸그룹 구구단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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