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은 최대주주가 강해졌고 차후 승계에 대비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오너이지만 경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선출(무소속, 울산 동구)된 이후 정치에 뜻을 펼치느라 1991년 고문으로 물러난 이후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다.
하지만 7선 의원을 끝으로 서울시장(2014)과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2015)에서 연이어 낙마한 이후 일단 정계 활동을 접고 권토중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 전환을 결정한 배경에선 차기 정치 행보 전에 가업을 정리해두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정몽준 이사장은 자신이 선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죽마고우 CEO(최고의사결정권자)를 사실상 경질 조치(2014년)해 경영복귀설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 대신에 아들인 정기선 씨에게 2015년부터 상무 직책을 맡기는 대안을 택했다.
현대중공업의 지주사 전환은 30년 넘게 정 이사장의 비서 역할을 하며 복심이라 불리는 권오갑 부회장이 실행 중인 프로젝트다. 무너진 체계를 바로잡고 사업을 지주사(현대로보틱스) 등 4개 상장사와 2개 비상장 자회사로 나누는 작업이다.
현대중공업은 이 과정에서 13.36%에 달하는 자사주를 최대한 활용해 지배구조를 정리하고 있다. 회사를 인적분할로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나누면, 잠자던 자사주 의결권이 부활하는데 이를 지배력 강화의 지렛대로 삼는 방식이다.
실제로 분할전 10.2%에 불과했던 정 이사장의 지배력(현대중공업 지분)은 분할 후 최근 유상증자 조치 등을 통해 25.8%(지주사 현대로보틱스 지분)로 강화됐다.
최대주주는 자신의 지배력을 산술적으로 3배 이상으로 강화했다. 이는 현실로 이어진 3세 경영과 승계의 밑바탕이다. 이제 증여세 50%를 지분으로 현물대납한다 해도 과거보다 높은 지분율이 남는다. 여기에 강성 노조가 6개로 분리돼 구심점을 잃으면서 경영이나 대 노조 협상을 수월히 할 수 있다.
SK그룹의 역사는 창업 시점부터 형제간 공동경영이 근간을 이룬다. 6·25 전후 폐허의 잿더미에서 직기 4대를 조립해 선경직물을 재건하고 그룹의 기틀을 일군 창업주는 고인이 된 담연(湛然) 최종건 창업주다. 그 토대를 바탕으로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지금의 SK그룹으로 도약시킨 이가 담연의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의 세 아들은 일견 소외된 모습을 보였다. 큰 아들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8월 일찍 세상을 떴다. 둘째 최신원 회장은 SK네트웍스 분식 사태로 보유주식 11만주를 소각당해 SKC 대표 등에 머물다 12년 만인 지난해 대표로 복귀했지만 지분율은 1% 미만이다.
그러나 형제 중 유일한 서울대 출신으로 1994년 SK케미칼 과장으로 입사해 밑바닥부터 배워온 그는 신중하고 면밀했다. 차근히 경영능력을 인정받더니 2014년부턴 SK케미칼 지분에 집중해 올 초 17%대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오너 일가 일원이지만 사실상 맨손으로 독립을 시작해 성공을 목전에 둔 것이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그는 자사주의 마법(?)으로 현대중공업 사례처럼 17%대 지분을 약 40%까지 올릴 수도 있었다. 올 초까지 SK케미칼도 자사주가 13.3% 있던 터라 무리한 계산이 아니었다.
SK케미칼은 그러나 지난 6월 지주회사 전환을 발표하면서 먼저 자사주 전량을 소각 또는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13.3% 중에서 배당가능이익을 재원으로 매입한 8%(193만9120주)는 소각하고, 법규상 소각이 제한된 합병취득 주식 5.3%(129만7483주)는 시장에서 매각한 것이다.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최창원 부회장의 선택은 장기적인 경영권 안정과 주주친화 정책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에는 지주사 전환의 자사주 활용을 규제하기 위한 여러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재벌들이 이를 통해 돈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지분을 강화하는데 대한 사회적 논란이 적잖다. 최 부회장의 판단은 이런 사회적 논의와 제재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 정부 들어선 재벌의 주주이익 편취를 가려내고 그 이익을 원상복구하는 제재안까지 입법되고 있다. 현재 법률로는 합법이지만 사회적 합의에 역행하는 수단을 썼다가 20여년에 걸친 가업승계와 독립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크게 고려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최창원 부회장은 자사주를 소각 및 매각하고도 독립 과정에서 지주사 지분율을 20%대로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내년 초 지주사 아래로 SK케미칼(신설분할사)과 SK가스, SK신텍, SK건설 그리고 그 아랫단에 SK디엔디와 휴비스, SK유화 등 15개사를 보유한 작은 SK케미칼-가스 지주그룹의 오너가 된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