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소방관의 편견 깬 160cm 아담한 그녀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 2017.10.04 08:33

[인터뷰]'철인 3종급' 국내 1호' 女인명구조사 이루리씨

여성소방공무원 중에서는 처음으로 인명구조사2급 자격증 시험을 통과한 이루리 소방교(27)/사진=이미호기자


"선례가 없으면 어때요? 스스로 여성이라는 굴레 안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겁먹지 않고 여러 분야에 도전해 보는거죠. 제가 체력이 특별히 좋은 편이 아닌데 붙은 걸 보면, 전국의 모든 여성소방관들이 가능할껄요.(웃음)"

건장한 체력의 남성도 따내기 어렵다는 '인명구조사 2급'. 여성소방관으로서는 '국내 1호'라는 말에 다부진 체격과 거친 인상의 소유자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루리 소방교(27·충남 보령소방서)는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깼다.

지난 1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만난 그는 키 160cm의 아담한 체구에 20대의 특유한 발랄함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에 인명구조사 자격증을 소유한 여성소방관은 둘 뿐이다. 이 소방교가 2015년 11월 취득하면서 '국내 1호'가 됐다.

인명구조는 화재 등 재난현장에서 직접 사람을 들거나 업고 나오는 등 구명(求命) 업무 뿐 아니라 구조구급의 전 단계를 의미하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이다. 문 개방부터 응급치료, 상담 등 현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업무가 사실상 인명구조업무라고 보면 된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8월말 기준, 전체 소방공무원 4만4792명(남성 4만1537명·여성 3255명) 가운데 인명구조사 2급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은 3114명(6.9%)에 불과하다. (1급 자격증 보유자 118명으로 2급을 통과해야만 취득 가능하다.)

"입사 첫해에 화재진압 부서에서 6개월 정도 일했는데 그땐 화재대응능력시험(舊 화재진화사 2급) 자격증만 갖고 있었어요. 여성소방공무원 역량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서장님 말씀에 공감해 구조구급대로 가게 됐죠."

소방공무원의 직무별 분포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여성소방공무원 인력의 77%가 구급과 행정에 쏠려 있다. 반면 구조업무에 종사하는 여성소방관은 단 한명도 없다.


"처음엔 단순히 제가 현재하고 있는 일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한 두번 떨어지다보니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세 번째 떨어졌을 때에는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4수'만에 어렵게 따냈죠."

2015년 9월, 인명구조사 시험과목 중 로프 하강을 연습하던 모습/사진=본인 제공
인명구조사는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고된 시험으로 알려져있다. '철인3종' 경기와 맞먹는 수준의 체력을 요구한다. 기초수영능력(자유형·잠영·입영), 로프 하강 및 등반, 맨홀인명구조, 수평구조, 수상인명구조, 수중인명구조, 교통사고 인명구조(에어백, 유압장비) 평가는 기본인데다 수직구조, 요구조자 들것고정, 심폐소생술, 외상환자 응급처치 중 2과목을 추가로 봐야 한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단 하루만에 치러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더욱 힘들다. 각 과목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소방교는 어렵게 자격증을 따냈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고 전했다. 구조활동에 남자소방관을 배치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 상급자들이 워낙 많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씨는 구조활동에도 반드시 여성소방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충남 서천에서 근무할 때 '아내가 우울증이 있는데 자살시도를 하려는 것 같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어요. 남편은 출장 때문에 먼 곳에 있어서 저희가 경찰과 함께 출동했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아내가 자해를 시도하며 굉장히 격앙된 상태였죠. 특히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서 아무도 접근을 못하고 있었는데 제가 당시 막내였지만 용기를 내서 '대화를 시도해보겠다'고 했죠. 결국 아내의 마음이 누그러졌고 방안에 들어가 응급처치를 시도했습니다."

현재 이 소방교는 화재대책과에서 민원 업무를 맡고 있다. "화재 관련법을 공부해보고 싶었는데 이곳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방차, 대형펌프차, 물탱크차 등 특수차량을 모는 '기관원'도 해보고 싶어요. 인명구조사를 딴 이후에 다른 지자체 소방관들에게 격려 전화를 받았는데, 여성소방관으로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3년 4월, 충청소방학교 68기 동기들과. 사진 맨 뒷줄 오른쪽이 이루리 소방경/사진=본인 제공

베스트 클릭

  1. 1 나훈아 '김정은 돼지' 발언에 악플 900개…전여옥 "틀린 말 있나요?"
  2. 2 남편·친모 눈 바늘로 찌르고 죽인 사이코패스…24년만 얼굴 공개
  3. 3 "예비신부, 이복 동생"…'먹튀 의혹' 유재환, 성희롱 폭로까지?
  4. 4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5. 5 명동에 '음료 컵' 쓰레기가 수북이…"외국인들 사진 찍길래" 한 시민이 한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