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일본화' 막아라"… 메르켈 앞에 놓인 과제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 2017.09.26 14:12

고령화·투자부진 심각, 자동차 등 제조업도 위기… 脫원전 등 에너지 정책 불만도 커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눈부신 경제성과에 힘입어 4연임에 성공했다. 재임 기간 독일경제는 크게 성장했고 실업률도 낮아졌다. 4기 정부 구성을 앞둔 메르켈 총리에게 영광만 있었던 건 아니다. 독일 사회는 빠르게 늙어가면서 활력을 잃었고, 경제 성장은 정체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독일이 경제적 황금기를 즐기고 있지만, 철강부터 자동차까지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에서 위험 신호가 많이 나온다"면서 "메르켈 총리가 중대한 도전과제를 마주했다"고 전했다.

◇ 성공적이었던 1~3기…고령화·경기침체 등 극복해야

독일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메르켈 총리가 처음으로 총리가 된 2005년 3만4480달러에서 올해 4만9814달러로 44% 넘게 증가했다. 11%가 넘던 실업률은 4%대로 낮아졌다. 경제적 성과는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최장수 지도자가 되는 데 큰 힘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르켈 총리가 지난 12년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을 경제 강국으로 키웠다"고 평가했다. 세계 경제위기와 유럽경제위기 등을 슬기롭게 헤쳐나간 덕분이다.

완벽하게 보이는 독일경제도 내부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쌓았다. 우선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예측에 따르면 독일의 노동인구는 2020년대 들어 매년 20만 명씩 줄어든다. 이 때문에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2021년 0.7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독일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8%였다.

독일의 고령 인구 비율은 올해 26.5%에서 2025년 39.3%로 급등할 전망이다. 이번 세기 중반에는 56%에 이를 거란 전망이다.

메르켈 총리는 노동력 부족 문제를 난민 허용과 이민자 확대로 메운다는 계획이었지만, 반(反)난민·반이슬람을 기치로 내건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정치적 영향력만 키워줬다. AfD는 지난 24일 총선을 통해 제2야당으로 성장했다.
텔레그래프는 "분데스방크의 노동력 감소 전망은 극우정당 AfD의 원내 진출 이전에 작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AfD로 인해 반이민 정책이 강화되면 독일의 노동력 부족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메르켈 총리는 퇴직연금을 둘러싼 정치적 공세도 막아내야 한다. 메르켈 총리는 2014년 은퇴 나이를 기존 65세에서 63로 낮췄다. 노후 연금 수령 시기가 2년 빨라진 셈이다. 독일 정치권에서는 심지어 연정 내부에서도 이를 선거를 위한 ‘표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실업률 하락에도 허수가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양질의 일자리보다는 시간제 등 불안정한 근무 형태만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스햄프턴대학교의 독일 경제전문가 리차드 워너 교수는 “독일인들이 삶은 힘들다”면서 “숨은 실업자가 최소 100만 명은 넘을 것”이라고 전했다.

제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독일의 산업구조도 문제다. 특히 통신 인프라(사회간접자본) 등 디지털과 밀접한 분야에서 독일은 신흥국 수준에 머문다.

실제로 독일의 광케이블망 설치비율은 1.8%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터키나 멕시코보다도 못하다.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디지털 경쟁력은 세계 17위로, 미국(3위)은 물론 캐나다(9위), 영국(11위)에도 밀린다.

제조업도 위기다. 독일 경제의 14% 정도를 지탱하는 자동차산업은 전기차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부품이 덜 필요하다. 독일 자동차 부품산업은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지만, 전기차 시대까지 이어질지 의문이다.


텔레그래프는 "역사가들이 언젠가 (독일의) 어리석은 실수로 평가할 것"이라며 "디지털 기술과 AI(인공지능)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는 현재, 독일은 제조 기술에만 기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한 혜택도 더는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독일 정부 경제자문기관인 ‘경제전문가협의회’(GCEE)는 "2015년 이래 독일의 대중국 수출이 주춤해졌다"면서 "중국이 독일의 주력 수출품과 겹치는 제품 수출을 늘리면서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 중부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폭스바겐 자동차 공장. 산업용 로봇이 차체를 조립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산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AFPBBNews=뉴스1
◇ "독일은 몽유병 환자… 일본형 경기침체 경계해야"

GCEE는 메르켈 연립정부가 유럽경제위기의 일시적 완화와 유로화 환율 하락 등으로 인해 나타난 성과에 안주해 독일의 경제문제를 고칠 기회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현상이 투자 감소다. 독일은 1990년대 초반 GDP의 23%를 투자했으나 현재 17%만 투자를 한다. GDP 대비 정부의 투자규모는 유럽연합(EU) 28개국 평균 이하다.

위험기피 문화로 기업 환경도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악이다. 시장조사업체 프리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독일의 벤처캐피털 거래액은 21억 달러(약 2조3850억 원)로 미국(725억 달러)의 3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세계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기업 설립하기 가장 쉬운 나라’ 순위에서도 독일은 지난해 114위에 머물렀다. 미국(51위), 영국(16위), 프랑스(27위) 보다 기업 설립 환경이 매우 나쁘다는 뜻이다.

독일경제연구소(DWI) 마르첼 프라처 소장은 자신의 저서 ‘독일의 환상’에서 "독일은 ‘절제와 검약’에 대한 과도한 숭배로 투자하는 법을 잊었다"면서 "몽유병 환자처럼 경기침체로 한발씩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에너지 정책에서도 과제가 산적하다.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이후 탈(脫)원전을 선언했다. 대신 석탄발전이 크게 늘었다.

지난달에는 독일 석탄산업의 중심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에르켈렌츠에서는 수천 명이 참가해 독일의 석탄 화력발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독일 정부가 독일의 갈탄 산업 보호 등을 위해 화력발전 비중을 높게 유지하는 것에 항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텔레그래프는 "독일 경제의 부식은 EU의 양적완화, 유로화 사용, 일시적 경기 과열 등으로 가려져 왔다"면서 "독일 경제가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처럼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반(反)난민 정책을 앞세워 지난 24일 독일 총선에서 제3당으로 약진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프라우케 페트리 공동대표가 25일(현지시간) 또 다른 공동대표인 알렉산더 가울란트와의 불화 속에 AfD를 떠나 무소속으로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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