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우리가 알지 못하는 삼성 이야기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 2017.09.26 05:30
#1. 2014년 1월 11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해외 출국길에 올랐다. 자랑스러운 삼성인의 날 시상식이 끝난 직후다. 그리고 4월 10일 전까지 3개월 가량 이 회장은 건강을 추스를 겸 미국과 일본에서 체류했다.

이 회장이 일본으로 출국한 1~2월 최지성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장충기 미래전략실차장(사장), 김종중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사장)과 함께 일본에서 이 회장에게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상장, 삼성테크윈과 삼성석유화학 등 화학계열사의 지분 매각 등에 대해 보고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보다 2년 전인 2012년 2월 6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삼성SDS와 에버랜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상장계획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의 예견은 약 2년만에 번복됐다.

이 부회장의 생각과 달리 이 회장의 결재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 실장은 1월 이 회장에게 삼성의 사업재편과 지배구조 개편안을 보고 하고, 이를 실행하기 직전인 4월 일본에서 귀국한 이건희 회장에게 다시 한번 보고했다.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였다.

최 실장은 "정부의 순환출자 구조 단순화 요구 등을 이유로 상장과 계열사 매각 등을 해야 한다"고 보고하자 이 회장은 "지난번(1월)에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약간의 역정을 내며 재가했다.

당시 이 회장 보고 자리에 함께 했던 삼성 고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이 회장이 쓰러지기 한 달 전쯤 마치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듯 사업재편을 서둘렀다고 회고했다.

그 이전까지 이 회장은 삼성에버랜드의 상장 등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으나, 2014년 들어서는 적극적이었고 오랫동안 얘기해왔던 '글로벌 1등을 못할 계열사(화학, 방산)'는 잘할 수 있는 기업에 팔아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고 한다.

#2. 이 같은 결정을 한 후 한달, 귀국 20여일만인 2014년 5월 10일 저녁. 이 회장은 한남동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기자는 그날 저녁과 다음날 새벽 이 회장이 쓰러져 수술을 받던 그 시간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이 회장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회장 운명의 향배가 기사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었기 때문에 8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이 회장이 쓰러진 직후 잠시 혼란에 빠졌던 삼성이 재빠르게 안정을 찾고, 2014년과 2015년 초 상장과 계열사 매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회장이 쓰러지기 전 두 번에 걸친 결재를 얻었던 덕분이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의 재가가 없었다면 그렇게 빨리 진행할 수 없었다"며 "혹 나중에 이 회장이 일어나서 '누가 그랬어?'라고 하면 책임질 수 있는 전문경영인이 누가 있겠느냐"라고 했다. 이 얘기를 들은 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인 2015년 초다.


삼성의 사업재편은 당시 이재용 부회장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하고, 이를 대가로 최순실 모녀를 지원했다는 주장이 한 신문에 처음 나왔을 때 기자가 알던 내용과 다른 방향성에 '상당히(?)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은 1심 재판을 통해 최지성 전 실장이 "나는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이지, 이재용 부회장의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삼성의 내부를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삼성의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장, 전략기획실장, 미래전략실장 등 2인자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삼성 서울 서초사옥 C동 42층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 집무실이 있다. 대부분의 임직원들은 42층으로 가려면(거의 가는 경우는 없지만) 41층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야 한다.

35개의 계단을 걸어 42층에 오르면 이건희 회장과 함께 유일하게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이 미래전략실장이다. 그 아래 41층이 이재용 부회장, 40층이 장충기 미래전략실 실차장(사장) 등이 있다. 이런 배치가 삼성 내의 서열이다.

이 회장이 쓰러진 후 이 부회장은 주요 사안에 대해 실장으로부터 의견을 전달받았지만, 대부분의 일은 실장이 팀장 회의를 통해 전체적으로 조율했다.

최 실장과 이 부회장이 외부 손님들과 저녁을 함께 한 후면 최 실장이 자신의 벤츠 S500을 타고 먼저 떠나고, 그 다음에 이 부회장이 에쿠스(최근에는 체어맨)를 타고 떠난다. 나머지 사장들은 그 다음이다.

수십 차례를 지켜봤지만 이 순서가 어긋난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런 얘기에 재계의 다른 기업들조차 의아해 한다. 하지만 이것이 삼성식 서열이고, 의사결정 구조의 단면이다.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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