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지난 정부, 문화예술인 억압 교묘하게 이뤄져"

머니투데이 이경은 기자 | 2017.09.25 13:44

황석영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신청… 문체부 주도 행사 배제

소설가 황석영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 빌딩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 신청서를 제출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석영 작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에 올라 피해를 본 사연에 대해 증언했다.

황 작가는 25일 서울 광화문 케이티(KT) 빌딩에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에 나와 조사를 신청한 뒤 기자들과 만나 "광주항쟁기록, 방북이라는 전력 때문에 극우세력에게서 좌파다, 빨갱이다, 이런 비난을 받으며 거의 평생을 불온한 작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 지금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졌다"며 "그러나 최근 속속 드러나는 예를 보면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황 작가는 이날 준비해 온 문서를 읽어내려가며 그동안 겪은 피해 사례들을 언급했다.

황 작가는 "2010년 신문사에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인터뷰와 기고를 한 뒤 국정원 직원에게서 '정부 비판을 하면 개인적으로 큰 망신을 주거나 폭로할테니 자중하라'는 주의를 받았다"며 "2011년 희망버스에 동참하고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연대 공동대표를 맡으면서는 인터넷과 SNS를 통한 모함과 공격이 집요해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북 직후 저에 대해 안기부와 공안당국이 일방적으로 주장한 혐의내용을 누군가 짜깁기해서 인터넷을 통해 유포됐는데 이것은 국정원에서 흘려주지 않고서는 일반인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며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내려와 폭동을 일으켰다, 황석영이 쓴 광주항쟁기록은 북한책을 베낀 것이다, 황석영이 제작한 '님을 위한 행진곡'은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공작금을 받고 영화와 함께 만든 것이다 등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검증없이 보도됐다"고 지적했다.

황 작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사건 발생 후부터 문화인에 대한 관리와 억압이 노골화됐다고 증언했다. 황 작가가 작가회 성명서 발표에 대표로 나가 기자회견을 한 직후 청와대에서는 교문수석과 외교안보수석이 만남을 요구했다. 세월호 관련 일에 황 작가가 연루되는 것이 염려스럽다, 광주의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개작에 관한 글을 쓸 의향이 있는가, 통일위원회에 들어와 달라 등의 내용이었다.


이같은 회유와 압박에 황 작가가 거절 의사를 표시하자 정부의 제재가 이어졌다. 황 작가는 2014년 로마대학이 주최한 '한국과 유럽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청됐으나 이유없이 취소 통보를 받은 점, 제의를 받은 영화·뮤지컬·드라마 등이 계약 단계에서 갑자기 취소된 점 등을 언급했다. 2016년 3월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파리도서전에 황 작가가 참가한 것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관련 실무를 맡은 번역원을 추궁해 시말서를 쓰게 하고 황 작가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 작가는 당시를 회고하며 "주빈국인 한국측에 대통령은 커녕 문화부 장관이나 문화원장, 현지대사도 안오는 처사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또 황 작가는 "2014년부터 해마다 6월이면 국민은행 동대문지점에서 검찰 측의 '수사목적'에 의한 요청으로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내게 통보됐다"며 "내 작품의 프랑스어 번역가인 대학교수는 세월호 유족을 돕기 위한 모금행사에 성금을 보낸 후부터 같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이 같은 피해사례들을 밝히면서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망명과 투옥 등으로 보내며 작품을 쓰지 못하고 허비했다"며 "스스로 인정은 하지 않지만 국가보안법상 처벌을 이미 받은 사람으로서 되풀이되는 모함과 명예훼손은 작가로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지난 두 차례 보수정부에서는 문화예술인에 대해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억압·관리 해 온 것 같다"며 "뒤에 숨어서 치졸하게 하수인들을 시켜 댓글로 모해하고, 누구 배제하라 지시하는건 사춘기 아이들도 아니고 왕따시키란 이야기 아니냐. 국가가 이런 일을 자행했다는 건 문화야만국의 치부를 드러낸 일이다. 부끄러워서 어디 나가서 한국문학이 어떻고 한류가 어떻고 이런 소리를 할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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