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소멸되지 않았다, 찾을 수 없을 뿐

머니투데이 김초엽  | 2017.10.08 07:48

[2회 과학문학공모전 중단편소설] 대상 '관내분실' <4회>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준호의 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은 조용했다. 준호는 어제 하루 종일 지민에게 단순한 시스템 착오일 테니 걱정할 것 없다며 위로한 차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도서관에 도착해 연락을 받고 왔다고 말하자 사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를 데려왔다. 마르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한 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이 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 관리자라고 말했다. 지민과 준호는 그를 따라 도서관 안쪽에 딸린 작은 방으로 향했다. 방문객을 접대할 때 사용하는 듯한 공간이었다. 소파 두 개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몇 종류의 간식거리들이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죠?”
한 여직원이 커피와 쿠키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 지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묻고 말았다.

“우선 여기 앉으세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도서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관리를 잘못하신 거 아닌가요?”
지민이 그의 말을 잘랐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의 중언부언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남자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엄밀히 말해 저희 측의 잘못이나 데이터 관리 부실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일은 매우 드물다 보니, 당시 직원이 자세한 설명을 못 드린 것 같습니다.”

잘못이 없다니. 무슨 변명을 해서 뒤집어씌우고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건가? 지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준호가 물었다.

“문제가 뭔지 말씀해주시죠. 저희 어머님은 어떻게 된 겁니까?”
“지민 씨.”

남자가 지민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그가 차분히 말을 골랐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어머님을 검색망에서 분리했습니다. 인덱스를 제거한 겁니다. 데이터가 삭제된 건 아니에요. 소멸되거나 도서관 밖으로 이관되는 데이터들은 반드시 기록을 남기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소멸 목록에는 없더군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분리했다니?

“어머님은 이 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 어딘가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찾을 방법이 없어요. 김은하 씨의 마인드에 접근 권한을 가진 분 중 누군가가, 은하 씨를 검색할 수 있게 하는 모든 종류의 인덱스를 지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민 씨가 한 일이 아니라면, 주위 가족분들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야기는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지민이 물었다. “데이터베이스에 있는데 어떻게 찾을 수가 없는 거죠? 데이터를 검색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도서관의 원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했던 겁니다. 아마 두 분도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남자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저희 도서관은 고인들의 기억과 행동 패턴을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서 저장합니다. 그건 단지 텍스트나 이미지, 동영상과 같은 쉽게 분석 가능한 데이터와는 달라요. 마인드는 한 사람의 일생에 이르는, 매우 막대하고도 깊이 있는 정보의 모음이죠. 수십 조 개가 넘는 뇌의 시냅스 연결 패턴을 스캔하고,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구현된 결과물입니다.”

남자는 패드를 들어 도서관의 홍보 영상 일부를 보여주었다. 지민은 별달리 시선을 주지 않은 채로 그의 말을 들었다.
“따라서 마인드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검색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기억들은, 직접 언어화할 수 없는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이죠. 아직 시냅스 패턴 자체를 해석하는 것은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마인드마다 일종의 인덱스를 붙이는 방식으로 마인드를 분류합니다. 혹시 구식 도서관에 가보신 일이 있다면, 도서관들이 종이책에 서지 분류에 따른 작은 라벨을 붙여 책을 분류하고 있는 것을 보셨을 거예요. 종이책들만 하더라도 단순히 텍스트를 검색해서 찾기에는 그곳에 담긴 정보들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제목, 작가, 책의 핵심적인 요소를 요약하는 몇 가지 키워드 등으로 책을 찾을 수 있도록 했었죠.”

지민은 구식 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릴 적에 누군가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보았던 기억은 있다. 색색의 라벨이 책등 아래쪽에 붙어있었다.

남자가 흘끗 지민의 표정을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마인드 도서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각 마인드들에는 인식을 위한 인덱스가 붙어요. 가장 주된 것이 임의의 영문자와 숫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고유인식코드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이 코드를 찾지 못할 경우의 대비책을 위해서 고인의 이름, 생전의 주소, 유족분들의 동의가 있다면 친지분들의 신원 번호를 추가로 수집합니다. 보통 이 정도만 되어도, 무언가 오류나 착오 때문에 데이터를 찾지 못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지민 씨 어머님의 경우에는…”

“그 인덱스를 전부 지워서 찾기 어렵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적어도 현재 확인 가능한, 지민 씨가 가진 카드나 고유 신상으로 조회할 수 있는 마인드는 없어요.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데이터 자체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기에… 가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접근 권한이 있는 다른 가족 분들에게 연락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민에게 남은 가족은 고작해야 둘 뿐이다. 칠 년 전에 연락을 끊어버린 아버지와, 드물게 전화를 주고받을 뿐인 동생. 어느 쪽일까?

“대체 왜 그런 일을 하게 놔뒀죠?”
준호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지민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족분들에게는 마인드의 접근 권한과 관련된 어떤 설정이든 변경하실 권한이 있습니다. 마인드를 소멸하는 일도 가능하니까요. 처음 마인드 업로딩을 할 때 모두 안내해 드린 사안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게 소멸과 다른 게 뭔가요?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유족들의 동의를 전부 받지 않고 그냥 진행해도 됩니까? 게다가 접속할 수 없다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따져 묻는 준호에게 남자가 답했다. 준호의 지적은 분명히 의미가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소멸과는… 다르죠. 접속할 수는 없지만, 마인드 자체는 이 데이터베이스 어딘가에 있는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사망과 실종이 다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인드는 단순한 데이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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