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디지털 판옵티콘에 갇힌 사회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 2017.09.27 03:00
미국 정보당국의 기밀 감시프로그램을 폭로한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 /사진=가디언 동영상 캡처

#올 초 국내 개봉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스노든’.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민간 사찰 프로젝트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실화를 다뤘다. 영화에는 스노든이 자신의 여자친구 노트북 웹캠에 스티커를 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 정보당국이 노트북,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로 누구든 감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생긴 그의 실제 습관이라고 한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왠지 모를 찝찝함에 자신의 노트북 카메라를 막았다는 후문이다.

#가정집이나 매장에 설치된 IP 카메라를 해킹해 여성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촬영해 유포한 20대가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보안이 허술한 IP 카메라 1402대를 해킹해 자기집 들여다보듯 감시했다. 특히 IP 카메라에 내장된 ‘줌’ ‘각도조절’ 기능을 활용해 여성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속옷 차림 등을 몰래 촬영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역시 IP 카메라를 퇴출하는 집이 늘었다고 한다.

 노트북 웹캠을 막고 집안에서 IP 카메라를 없앴다고 내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을까. 올해 3월 위키리크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애플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스마트TV 등 스마트 전자기기들을 해킹해 정보 수집에 활용해왔다는 내부 문건을 폭로했다. 모든 가정에 있는 TV까지 정보기관의 감시도구로 활용됐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CIA가 개발한 해킹 프로그램이 스마트 TV에 설치되면 전원이 꺼진 것처럼 위장(가짜 꺼짐 상태)한 뒤 집안의 모든 음성과 소리를 도청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대부분 최신형 TV는 인터넷에 연결된다. 전원이 꺼져 있는 줄 알았던 TV가 몰래 나를 훔쳐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판옵티콘’(Panopticon)을 닮아가고 있다. 판옵티콘은 중앙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원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이 있는 원형 감옥을 말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모든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죄수들은 감시탑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 행동과 말을 조심한다. 1975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네트워크와 DB(데이터베이스)로 개인의 일상을 통제하는 현대 사회의 감시·통제체계를 판옵티콘에 비유했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개인들의 일상이 디지털 서버에 저장되는 사물인터넷 시대. 우리는 이미 판옵티콘처럼 누군가에 의해 보이지 않는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집안의 로봇청소기와 냉장고가 어느 순간 감시자로 돌변할 수도 있다. 누구든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 트루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혹자는 그래서 보안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4년 전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국가권력의 민간인 사찰 프로그램의 진실을 폭로한 스노든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내로라하는 천재 프로그래머였던 그가 정보당국의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취한 최선의 방법은 노트북 웹캠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휴대폰을 전자레인지에 넣는 것이었다. 100% 막을 수 있는 보안기술이나 프로그램은 없단 얘기다.

 그렇다고 스마트화한 현 사회를 부정하거나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가자는 식의 주장을 하자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인간과 사물, 기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에 접어들었고 그 물결은 거스를 수 없다. 다만 우리 스스로 판옵티콘 속 죄수로 전락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더 이상 놀랍지 않은 뉴스가 돼버린 것은 아닌지, 안전이라는 미명 아래 어느 정도의 감시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 안타깝고 두렵다. “가장 두려운 일은 (폭로 후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한 스노든의 외침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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