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화초와 수목의 서정

머니투데이 공광규 시인 | 2017.09.23 07:41

<119> 조미애 시인 ‘꽃씨를 거두며’

여인의 슬픔을 전쟁과도 같았다고 폭력적 비유를 사용하는 조미애 시인은 맨드라미에서 외할머니 옷고름을 연상한다. 맨드라미의 붉은 색은 입술로 맨드라미에 내리쪼이는 햇살은 진주 알처럼 부서진다고 비유한다. 이렇게 시에 화초와 수목을 많이 끌어들이는 조 시인을 식물성 시인이라고 해도 되겠다.

시집의 목차만 순서대로 훑어보아도 꽃씨, 미역, 괭이밥, 부활초, 꽃대, 상추꽃, 식물, 호접란, 프리지어, 나팔꽃, 들나팔, 맨드라미, 장미, 풀꽃, 민들레, 초록의 나뭇잎, 씨앗, 고구마 등 화초와 수목의 어휘가 다량으로 튀어나온다. 시의 내용 속에는 더 많은 화초와 수목이 등장한다. 이것이 조미애 시의 제재적 특성이나 개성일지도 모르겠다.

시 ‘맨드라미’가 맨드라미에서 외할머니를 연상하여 쓴 시라면, 시 ‘가을 남천’은 전주천에서 어머니를 연상하여 쓴 시다. “가을 남천에 찬 이슬이 내렸다/ 전주천 맑은 물은 어머니의 남색치마/ 가로수 은행잎은 어머니의 노랑저고리/ 푸른 물길에 노랑저고리 휘날리는 계절이면/ 남천은 저고리의 붉은 옷고름이 되었다.”라며 맑은 물에 어머니의 남색치마, 은행잎에 어머니의 노랑저고리를 비유하고 있다.

결혼식장에 있었다
구절초 만발하여 향긋한 공간으로
광목과도 같은 긴 천들이 휘날린다
휘장 너머 신랑과 신부의 얼굴은 흐릿하다
유쾌한 하객들의 웃음이 수채화처럼 번지고
창밖은 푸른 바다로 이어져 하늘에 닿아있었다
바람 한 점 일어서자 파도가 출렁인다
그때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날아왔다
고들빼기 꽃이 핀 시골집 텃밭을 옮겨온 것일까

그리워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꿈인 줄 알면서도 결코 깨고 싶지 않았다
- ‘꿈속에서‘ 전문

이렇게 조시인은 현실에서 넘치는 화초를 꿈속에 까지 끌고 다닌다. 꿈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로 감각되지 않는다. 편집증이 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시인들은 대부분 이런 환자들일지도 모른다. 화자는 꿈속에서 결혼식장에 있고, 결혼식장은 구절초가 만발하고,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나고, 고들빼기 꽃이 피는 곳이다. 화자는 꿈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깨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 식물성의 시인은 1983~88년 ‘시문학’으로 추천 등단하여 첫 시집 ‘풀대님으로 오신 당신’ 이후 5권 째 시집이다. 월간문학상 등 문학상도 여러 개 받았고, 참여정부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현재는 전북시인협회장을 맡고 있다.

시집의 권두언에서 시인은 “나의 글쓰기는 가벼운 기침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으며, “한 편의 시는 수직선 위의 한 점”이라고 한다. 시가 인생의 노정에 점을 찍는 일이라는 것이다. 시집을 읽으며 인생을 화초와 수목의 시편으로 점을 찍으며 가는 운명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를 생각해보았다.

◇꽃씨를 거두며=조미애 지음. 이룸나무 펴냄. 112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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