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가에서 보수정치의 길로…신상진 "정치는 이상과 현실의 변증법"

머니투데이 김민우, 우경희 기자 | 2017.09.20 05:20

[the300][런치리포트-상임위원장사용설명서]①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신상진 위원장

인터넷이 일상화되면서 개인정보보호는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며 ‘인터넷 장의사’라는 새로운 직업까지 탄생했을 정도다.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 흐름에 맞춰 ‘빅데이터’가 주목받으며 ‘개인정보보호’의 가치와 충돌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개인정보보호 강화를 주장하며 그를 찾고 누군가는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의 무조건적 보호가 능사는 아니라는 논리로 그를 만난다.

의원회관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동료 의원은 물론 정부부처 관계자, 기업계, 시민단체, 지역주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를 찾는다. 전화나 인터넷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 등 그를 만날 수 있는 창구도 다양하다. 특정 이해집단의 ‘민원’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각각 상반되는 의견이 모여 ‘진흥’과 ‘규제’ 속에서 절충점을 찾아간다. 때로는 법 개정으로, 때로는 정부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해결점을 찾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신상진(자유한국당) 위원장의 사용법이다.

◇시비를 가리기 좋아하는 소년, 노동운동가에서 보수 정치인의 길로 = 지난 6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만난 신 위원장은 어려서부터 ‘시시비비’ 가리기를 좋아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 성적표가 받아 들었을 때다. 그보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는 ‘올 수(전과목 수)’를 맞았다. 그러나 신 위원장은 ‘우’와 ‘미’가 섞여 있었다. 그 때 세상의 불공평함을 처음 맛 봤단다.

어머니는 미싱사였다. 8남매가 함께 살던 단칸방은 낮이면 어머니의 작업실이자 동네 사랑방으로 변했다. 아주머니들이 놀러와 한나절씩 수다를 떨 때 신 위원장은 불쑥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며 끼어들었다. “어린 녀석이 어른들 얘기에 끼어든다”며 핀잔을 받곤 했지만 그런 일은 반복됐다. “이런 습성 때문인지 서울대 의대를 진학하고 편하게 의사의 길을 걸으면 될 것을 굳이 노동운동이다, 야학이다 하며 사서 고생을 했다”고 신 위원장은 회고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구로와 인천의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주로 했는데 신 의원은 이들과 달리 성남으로 향했다. 힘들더라도 노조가 없는 곳, 노조를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이 되고자하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터를 잡은 성남시가 이제는 신 위원장의 ‘제2의 고향’이 됐다.

그는 8년간의 노동운동 중 감옥에서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 후 의대에 복학했다. 의사가 된 이후 삶도 평범치 않았다. 김해성 목사(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 무료진료 봉사 활동을 했고 대한의사협회장으로서 의약분업 투쟁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던 중 노동운동 할 당시 연을 맺었던 김문수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 위원장을 만나 정계에 입문했다. 그 뒤로 4선이다. 소위 진보적 이력을 가지고 보수정당에 입당한 것을 두고 그는 세계관에 균형을 맞추게 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계파정치는 'NO'…"정치는 이상과 현실의 변증법" = 신 위원장은 계파가 없다. 한번은 동료의원의 권유로 친박계(친박근계) 모임에 참석해 봤는데 한번으로 그쳤다. “계파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 유지를 위해 작전 모의를 하는 것이더라. 그 모습을 보고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경선에 출마한 이명박·박근혜·손학규 후보를 중심으로 당내 계파 분화가 한창이던 시절에도 그는 ‘중립’을 택했다. 세 후보 모두 그에게 도움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당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달리고 있던 이 후보가 직접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했을 때도 그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중립’을 지키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는 이상과 현실의 변증법과 같은 조화의 연속”이라며 “정당과 정치를 일삼고 있는 국회의원으로서 이는 방관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했다. 중립을 유지하던 그가 훗날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을 하게 된 이유도 이러한 판단에서였다고 한다.

◇이름없는 ‘4선 의원’의 외로운 당대표 도전…경기지사 출마는 = 신 위원장은 자신의 가치관을 “이름을 드러내기보단 공동체 일원으로서 옳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그는 4선의 중진의원이지만 그동안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묵묵히 의정활동을 한 탓에 ‘선수’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져 있다. 그는 거칠고 센 발언을 해야 주목받는 정치현실 속에서 “정치는 점잖아야 한다”며 “정치인이 TV병 환자가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던 그가 한계를 실감한 것은 지난 6월 한국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면서다. 당이 어려운 순간 이렇다 할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당 대표가 돼 당의 변화를 모색해기 위해서 나섰다. 그러나 갑작스런 도전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낮은 인지도 탓에 전당대회에서 ‘꼴찌’를 했고 그가 마음먹은 꿈은 펴보지도 못했다.

그의 목표는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 합리적 성향의 중도보수정당으로 당을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큰 틀에서 가치정당으로 헤쳐모여 국민들로부터 올바른 평가와 지지를 당당하게 받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신 위원장은 “바른정당과 국민의당과도 낮은 단계의 선거연대를 하든 합당을 하든 그런 것이 필요하다”며 “다당제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줘야 한다. 중간정당은 책임정당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에게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출마 의사에 대해 묻자 “선거에 나와서 떨어지더라도 이름을 알리고 이를 밑천삼아 다음 번에 당대표에 나가는 식의 계산을 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당이 어려우니까 당원들과 도민들 상당수가 '신상진 좀 나와라' 하면 희생하는 마음으로 나갈수는 있다”고 여지를 열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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