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범 지니언스(구 지니네트웍스·사진) 대표의 포부다. 이 회사는 네트워크접근통제(NAC) 시장 1위 기업이다. NAC는 쉽게 말해 기업 내부망에 허가를 받은 유무선 단말기만 접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이다. 네트워크 보안의 첫번째 수문장 역할이다. 최근에는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에 물리는 제4차산업혁명 시대 핵심 보안기술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국내 시장에는 적수가 없다. 이제는 시스코 등 공룡들이 장악해온 해외 무대에서 승부를 낼 요량이다. 지난달 증권 시장에 상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엔지니어가 회사 전체 인력의 30%를 넘어서는 기술 전문기업이지만 이 회사에는 ‘크런치 모드(Crunch Mode)’가 없다. 크런치 모드란 게임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업계의 고질적인 야근 관행을 뜻하는 은어다. 이 회사 직원들에게 야근은 ‘열심히 일한다’는 표상이 아니라 ‘계획을 세워 업무를 실행하지 않아 생긴 벌당’에 가깝다. 밤샘 근무가 없지만 회사는 설립 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이동범 지니언스 대표를 경기도 안양 본사에서 만났다.
-창업 12년 만에 상장을 추진한 소회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상장이 목표는 아니었다. 오히려 전에 다니던 회사가 상장 후 변질 되는 것을 보면서 상장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창업 후 10년간은 먹고 사는 데 급급했다. 그러다 2년 전쯤 처음 회사를 세우며 다짐했던 목표를 돌아보게 됐다. 더 늦기 전에 생존 문제 때문에 가려져 있던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기업 공개를 한 이후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이 급선무였다. 상장을 준비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외부에서 투자도 받았다. 미국 시장에서는 이번 상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창업 후 한해도 적자를 내지 않고 순항했는데 비결이 있었나.
▶회사를 세우기 전까지 나도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개발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직원 개개인의 역량에 의지하는 프로세스로는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었다. 개발자 개개인의 컨디션에 따라 조직 역량이 좌우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업무의 시스템화다. 일주일, 한 달 단위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과정을 체계화했다.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당장 급한데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나는 ‘그 당장 급한 것을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IoT 시대로 접어들면서 NAC의 수요가 더욱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실제 해외시장 수요는 어느 정도인가.
▶정보기술(IT) 환경이 모바일화되면서 내부망뿐 아니라 내부의 다양한 모바일 기기를 콘트롤 할 수 있는 기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해외 NAC 시장은 성장 중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기업은 NAC를 기본적으로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최근 들어 우리가 시도한 클라우드 NAC 서비스를 시작하려는 스타트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NAC는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여러 요소와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성은 앞으로 충분히 더 확대될 수 있다.
-해외 경쟁 상대는 시만텍, 시스코 정도인데 이들과 붙어 이길 자신이 있나.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 중간 지대를 공략할 계획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 중소기업, 공공기관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해외 사업을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한다. 이용자들이 기존에 쓰고 있던 브랜드에 관계없이 제품을 시험적으로 써볼 수 있다. 시스코가 하드웨어 중심, 시만텍이 백신 위주의 NAC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지니언스는 이를 하나로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궁극적으로 스마트팩토리, 스마트빌딩, 홈시큐리티등 IoT 보안관리 서비스 시장 공략이 우리의 목표다.
-국내 보안업체들이 해외시장에 오래전부터 진출해왔지만 두각을 나타낸 곳이 없다. 복안이 뭔지 궁금하다.
▶지난 10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해외 사업을 70~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공사 수주하듯 했다. 문제는 그 프로젝트를 따고 나면 ‘그 다음’이 없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꾸준하게 사업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고유의 브랜드가 없어서다. 지니언스는 지금 미국 시장에 무료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하면서 브랜드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보스톤에 세운 법인을 통해 미국 NAC 회사들과 파트너십도 구축했다. 무료 서비스가 끝나면 이용자당 과금을 하는 수익 모델을 적용할 생각이다.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면 2년 내에는 손익분기점(BEP)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브라질, 오만, 벨기에와는 이미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보안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국내 보안 산업은 이미 정체기인 것 같다. 보안 1세대로서 어떻게 보는가.
▶국내 보안 산업의 위기다. 속속 탄생하는 스타트업 중 보안을 업으로 하는 곳은 가뭄에 콩 나듯 생긴다. 선두기업들은 기술이나 제품 면에서 업그레이드를 꾀하고 있지만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 1세대들이 차린 기업은 이미 안정화돼서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괄목할 만한 성장세도 보이지 않는다. 기술력 진보에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배들은 성공한 사업 모델이 없기 때문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젊은 사람들이 보안 업종에 대해 도전해 보고 싶은 벤치마킹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 좋은 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하는 이스라엘 같은 환경이 부럽다. 해외 보안업계에서는 M&A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업종은 혼자서 버틸 수도 없는 구조다. 혼자서 하다가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지니언스가 해외에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후배들이 뒤따르고 싶은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 해외시장에서 성공한 첫 번째 보안업체가 되겠다는 게 최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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