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렬의 Echo]필립스곡선과 아마존

머니투데이 뉴욕=송정렬 특파원 | 2017.09.15 03:20
세계적으로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 논란이 한창이다. “필립스곡선이 죽었다” “필립스 곡선이 망가졌다” 등 ‘필립스곡선 종말론’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학 상식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더 많은 제품을 소비하고 기업들은 공급을 늘리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주더라도 사람들을 고용한다. 그 결과 실업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올라간다.

이 같은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의 역관계를 보여주는 게 필립스곡선이다. ‘악어 사냥꾼’ ‘일본군 포로’ 등 다채로운 인생경험을 한 괴짜 영국 경제학자 올번 월리엄 필립스의 이름을 땄다. 그는 97년 동안의 영국경제 시계열자료를 바탕으로 명목임금 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 역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실증한 논문을 1958년 발표했다.

필립스곡선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은 현실적으로 동시에 잡기 힘든 ‘두 마리 토끼’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2가지 모순된 과제를 균형 있게 풀어야 하는 숙명을 안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 필립스곡선이 60년 가까이 버팀목 역할을 해온 이유다.

문제는 최근 필립스곡선과 현실경제가 ‘엇박자’를 낸다는 점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주요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최고의 성장률을 구가한다. 실업률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살아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분기에 3%를 기록했지만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7%에 그쳤다. 일본도 2분기에 4% 성장률을 달성했지만 인플레이션은 제로 수준을 맴돈다. 유로존의 인플레이션도 강한 경제회복세에도 1.5%에 머물러 있다.

필립스곡선의 신봉자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통화정책 결정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어서다. 더구나 금융위기 이후 견고한 경제회복세와 최저 실업률을 바탕으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려는 결정적 순간에 인플레이션이 발목을 잡고 있다.


백가쟁명식으로 다양한 원인분석이 제시된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경제통계가 임시직 고용자 등을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장이 지표만큼 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세계화, 노동조합의 쇠퇴, 저임금 노동력의 이동, 다국적기업들, 아웃소싱 확대 등도 거론된다. 슈퍼스타 기업들, 특히 아마존, 구글 등 IT(정보기술) 공룡기업들의 시장영향력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찰스 에번스 시카코연방은행 총재는 아마존의 유기농식품업체 홀푸즈 인수에 대해 “낮은 인플레이션을 지속시키는 파괴적 기술의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아마존은 신규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가격인하를 주도했다.

필립스곡선이 1970년대 경기침체에도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이상현상에 봉착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기존 개념의 수정과 발전을 통해 그 위상을 회복할지, 아니면 용도폐기될 운명에 처할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기존 경제학적 모델로는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세계 경제의 지형이 복잡다단해지고 빠르게 변한다는 점이다. 미 시카고학파 창시자인 프랭크 나이트는 확률로 계산할 수 있는 위험을 ‘리스크’로, 확률로 계산할 수 없는 위험을 ‘불확실성’으로 구분했다. 기존 경제학의 위기는 관리 가능한 리스크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인과 기업들은 어디에 서 있나. 어떤 기업인은 “스티브 잡스처럼 미래를 보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았고 어떤 기업은 아직도 최순실 수렁을 헤매고 있다. 경제구조마저 뒤바꿀 내일의 아마존을 꿈꾸기는커녕 당장 오늘의 몸보신이 당면과제다. 한국 경제의 안팎이 모두 깜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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