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서에서 제일 예쁜 직원"…칭찬 아닙니다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 2017.09.14 06:25

[직장인 대나무숲①]'칭찬' 가장한 직장 내 성희롱…기준은 피해자의 '혐오감' 여부

편집자주 | '직장생활=스트레스'라는 공식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활동 영역이 직장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고된 업무만이 문제는 아니다. 상사의 성희롱, 사생활 침해, 회식과 엠티를 강요하는 조직문화 등 일에만 신경 쓸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이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상사·동료에게 말 못 할 고민을 쌓고 있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직장인 A씨(26)는 소속 부서의 유일한 여성이다. 어느 날 A씨의 상사는 거래업체에 A씨를 소개하며 "우리 부서에서 제일 예쁜 직원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A씨는 "남들과 똑같이 일하러 갈 뿐인데 왜 외모로 나를 소개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B씨(여·28)는 출근 때마다 듣는 팀장의 외모 품평이 너무 심해 이직을 고민 중이다. 팀장은 여직원을 쳐다보면서 "어휴 OO씨는 몸매가 좋아"라고 하거나 여직원들을 위아래로 훑으면서 "얼굴이 부은 것 같다. 살찐 건가?", "머리 왜 잘랐어, 남자 같은데" 등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을 많이 한다. 최근엔 벌레를 보고 소리 지르는 여직원에게 "덩치에 안 어울리게 소리 지르냐"고 나무랐다.

#직장인 C씨(남·30)는 회식 자리에서 여자 상사로부터 어깨가 넓다며 상의를 벗어보라는 농담을 들었다. 당시 옆자리 다른 남자 선배는 이에 동조하며 "OO선배가 벗으라면 벗어야지!"라고 말했다. C씨는 "아무리 농담이어도 당장 항의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며 "남성도 성희롱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13일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및 교육업체 등에 따르면 '칭찬'을 가장한 사내 성희롱과 외모 품평에 불쾌했던 경험이 있다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듣기에 불편하지만 문제를 제기하기에 모호한 점이 있어 사내 고발 등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경우도 많다.

성희롱이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성적 언동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요구 등에 불응한 것을 이유로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가해자가 어떤 언행을 했느냐보다 그 언행이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줬는지가 중요하다. 행위자가 칭찬이라고 주장해도 피해자가 성적 혐오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이 될 수도 있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직장 내 성희롱 피해는 여성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5월29일 발표한 '남녀 근로자 모두 위협하는 직장 성희롱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 1명이 6개월간 경험한 평균 성희롱 횟수는 남자 6.79회, 여자 5.79회다. 남성이 여성보다 직접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피해 유형은 남녀 간 차이가 있다. 여성은 △성별 관련 업무 능력 비하 △여성성 비하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평가가 많다. 남성은 △본인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음담패설 △음란물을 보여주는 행위 △성관계 강요 및 회유 등 보다 직접적 성희롱과 성추행 사례가 다수를 차지했다.

가해자는 주로 남성이다. 남성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 성비는 남성 86.4%, 여성 13.6%로 남자가 많다. 여성에 대한 가해자 성비도 남성 78%, 여성 22%다. 주요 가해자는 간부·임원이 34.6%, 직속 상사가 28.4%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많은 성희롱 피해자들이 적극 대응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자의 54%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고 답했다.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로는 '상대방과의 관계 때문'(45.6%), '대응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36.3%),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30.6%) 등이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과 피해자를 보호하는 사내 신고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남녀 모두 성희롱 행위를 접할 경우 해당 행위가 성희롱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며 "피해자와 목격자 모두에게 접근성이 높은 소통 창구를 설치해 실질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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