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서 뛰다 폐가 얼어붙은 ‘소녀’는 어떻게 죽었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7.09.09 06:49

[히스무비] ‘윈드 리버’…살인보다 발견이 어려운 ‘그곳’에서의 의문의 죽음

미국 서부 인디언 보호구역 '윈드 리버'는 살인을 해도 발견이 어려울 만큼 외지고 넓은 곳이다. 사회적으로는 고립돼 있고, 정서적으로는 고독한 일상이 반복되는 이곳은 주인공 말처럼 ‘눈과 지루함’에 묻혀 나날을 견딜 뿐이다.

어느 날 고요한 설원 위를 맨발로 달리던 한 소녀가 피를 토한 뒤 숨을 거둔다. 윈드 리버의 야생동물 전문 사냥꾼 코리(제러미 레너)는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고, 신참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과 사건 해결을 위해 힘을 모은다.

표범의 희생양으로 보기 쉬운 살해 현장의 숨은 비밀은 무엇일까. 전문가 코리의 눈에 소녀의 죽음은 동물이 아닌 인간에 의한 것이다. ‘의지가 강했던’ 이웃집 소녀의 지난날을 기억하던 코리는 발자국을 통해 급하게 ‘뛰었던’ 모습을 유추하고, 흘린 피의 잔영을 보고 강추위에 폐가 얼어붙었다는 사실을 읽어낸다.

영화는 우리가 접하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충격적 소재를 담은 범죄물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다만, 사회적 테두리를 벗어난 특별한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의 특수성 때문인지, 주체와 객체의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범죄의 주체인 가해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당위성을 앞세워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거의 ‘동물적 습성’에 기댄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반면, 피해자와 그 가족은 약육강식의 생존논리에 따라 타자를 향한 외침보다 자신을 향한 자해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식이다.

안으로 삭인 피해자의 분노를 상식적 잣대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몫은 이제 동물 사냥꾼과 신참 수사관에게 맡겨졌다. 비교적 ‘사회적’인 그들은 자연 울타리에서 벌어진 가해의 정도를 파악한 뒤 ‘원칙적’으로 그만큼 되갚는다.



영화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주류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사는 사람들이 겪는 처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곳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결국 동물의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

극한의 외로움을 느끼고, 기약 없는 내일을 사는 이들의 ‘가해’는 사회가 방관한 무책임의 산물은 아닌지, 피해자의 외치지 못하는 아픔 역시 보호받을 수 없는 막힌 사회의 단면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하는 영화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도 제작 노트에서 “현재 미국 국경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하얀 눈밭으로 뒤덮인 세상이 순수함의 결정체라고 믿는 허황된 신념은 그 속에 흩뿌려진 빨간 피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지난 8월 초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29위로 출발했으나 입소문을 타고 개봉 5주차에 3위까지 오르는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다.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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