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블라인드 채용이 달갑지 만은 않은 이유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 2017.08.23 17:11

인사전문가 의견 직접 들어보니…"대통령 선언만으로 준비없이 도입" "기업 리스크 관리 어려워질 것"

한국프로사진협회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1번가 국민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에서 '이력서 사진 부착 금지'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뉴스1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9월부터 지방 공공기관 전체로 확대되면서 인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합리한 차별, 즉 편견을 없애고 실력으로 인재를 채용하자는 취지지만 자칫 '운에 의한' 채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제는 7월부터 모든 공공기관에서 시행됐고, 8월에는 지방공기업, 9월에는 지방출자·출연기관을 포함한 지방 공공기관 전체로 확대된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올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고 민간에도 권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인사전문가들은 블라인드 채용 자체가 '대통령 선언'으로만 급작스럽게 도입됐다는 점에 가장 우려를 표한다. 즉 그간 채용기준으로 삼았던 출신학교·학점 등을 배제하는 대신 '새로운 평가 잣대'가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가 전혀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 처장은 "실력만 보고 뽑겠다면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정부에서 그 누가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기준 없는 블라인드 채용은 결국 취지를 왜곡하고 숱한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공공기관 등 공적영역에서 일괄 도입하는데 대해서는 "주인이 있는 민간기업은 이걸 선택해야할지 말지 고민하겠지만 책임질 사람이 없는 공공기관들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면서 "변별력 있게 인재를 뽑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민간기업 뿐만 아니라 공직에서도 다년간 인사업무를 맡았던 전문가 A씨도 "앞으로 무엇을 가지고 개인 역량을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며 "과거의 '헌 잣대'를 없앤다는 말만 하지 '새 잣대'가 될 기준에 대해서는 정부가 말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론상 업무역량을 가장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직접 일을 시켜보는 것'이라는 점에서 인턴제나 실무면접이 보다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인턴은 '열정 페이' 등 악용 소지가 많은데다, 실무면접도 기술적인 요소는 평가가 가능하지만 태도는 단기간에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면접이 강화되면 결국 첫인상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만큼 성형외과가 호황을 누릴 가능성이 높고, 직원 1명을 뽑는데 드는 비용이 지금보다 수십배 많아질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전문가 B씨는 "실제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에 대해 분석해 보면 첫인상이 좋았던 사람을 뽑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편견을 다른 편견으로 대체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채용의 경제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즉 학력·학점 등을 보고 뽑는 기존 채용기준을 적용하면 소위 최악을 쉽게 걸러낼 수 있다. 여기에는 탁월한 인재를 놓칠 가능성도 이미 계산돼 있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면 아주 좋은 사람도 뽑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이상한 사람' 뽑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인사전문가 C씨는 "예전 같으면 당연히 걸러졌을 사람이 첫인상 등 다른 이유로 뽑히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라며 "채용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리스크 관리가 안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서류전형이 폐지되고, 필기전형이 사실상 '1차 관문'이 될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양질의 필기시험을 치를 수 있지만,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시험 자체를 사서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민간 시험출제 회사들만 배불리는 부작용이 불거질 수 있다. 그 시험이 과연 타당성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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