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이재용의 '피할 수 없는 수'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 2017.08.21 03:59
‘주역’에 ‘수불가도’(數不可逃)라는 말이 나온다. ‘피할 수 없는 수’라는 의미다. 대단히 흉한 일이지만 달리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아주 가끔 이런 끔찍한 상황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지난 2월 구속기소돼 6개월 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 오는 25일 1심 선고를 앞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이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지난해 말 국회에서 관련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청문회부터 ‘이재용 청문회’로 변질되더니만 재계 총수 중 유일하게 이 부회장만 구속됐다. 그후에도 ‘세기의 재판’이라던 이 부회장의 재판은 ‘세기의 정치재판’ ‘세기의 여론재판’으로 흘러갔고 특검이 12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아직 선고가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12년 징역형은 끔찍한 형량이다. 고 신영복 선생처럼 2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고도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자존을 잃지 않은 것은 물론 뛰어난 예지력을 보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10년 정도 감옥살이를 하고 나면 폐인이 되고 만다. 특히 지금처럼 초단위로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외부와 단절돼 10년쯤 보내고 나면 경영자로서 생명은 끝나고 만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자로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꿈을 접어야 할 정도로 중죄를 지은 것일까. 특검의 12년 구형은 아무리 봐도 정치재판, 여론재판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은 1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면서도 사익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탁한 게 없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해 서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이재용 재판 어떻게 될까’라는 토론회를 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국민연금은 최소 3000억원 이상 손실을 입었고 반대로 이 부회장은 1조8000억원의 이득을 봤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을 폈다. 말이 토론회지 사실은 법원 밖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정치재판 내지 여론재판을 하고 나선 것이다.

공판 횟수만 53차례, 59명의 증인이 나선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뇌물죄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도, 증언도 나오지 않음으로써 특검에 대한 비판이 잇따라 제기됐다.

그러자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대관업무를 총괄한 장 전사장이 언론사 전·현직 간부들과 사적으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는 같은 언론인으로서 봐도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이와 별개로 이 부회장에 대한 동정여론을 차단하는 데는 효력을 발휘했다. 다들 ‘삼성에 부역한 언론’이라는 손가락질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특검이 공소사실과 직접 연관이 없는 장충기 전 사장의 문자메시지를 흘린 것은 정치재판, 여론재판의 화룡점정이었다.

주역에 ‘도불허행’(道不虛行)이라는 말이 나온다. 직역하면 ‘도는 헛걸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악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결코 길이 없지는 않으며,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모든 게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서 정치재판, 여론재판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법과 증거에 따라 판결을 하고 도(道)를 세워야 할 사람은 25일 1심 선고를 할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이다. 또 어떤 선고가 내려지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당사자인 이재용 부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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