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교직마친 선생님, 가상화폐에 퇴직금을…

머니투데이 이보라 기자 | 2017.08.17 17:07

사기 피해자 5704명 대다수 은퇴자들… 경찰 "고수익 유혹, 꼭 사기 여부 확인해야"

정씨 등 8명이 피해자들로부터 빼돌린 현금과 범죄 증거물./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30년 교사 생활을 하고 명예퇴직한 김모씨(58)는 퇴직금으로 노후 자금을 마련하고 싶었다. 김씨는 가상화폐 투자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솔깃했다. 단기간에 100배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씨는 6월 중순 친구를 따라 속는 셈 치고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가상화폐 투자설명회에 참석했다. 자신과 또래인 50~70대 은퇴자들이 1000여명이나 모여 있어 일단 믿음이 갔다.

가상화폐 개발업체 대표라는 정모씨(58)와 개발자 박모씨(48) 등이 나서 비트코인을 모방한 가상화폐(1개 3원)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선전했다.

자신들이 개발한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원금 손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가상화폐가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인증받았으며 은행, 쇼핑몰 등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인터넷 포털업체 등 대기업에서 투자하고 있다는 안내도 따랐다.

이들이 내세운 가상화폐 보안프로그램 '한국형 블록체인 듀얼스파이더'는 그럴듯했다. 1양9100해개의 암호가 24시간 변동하면서 생성돼 해킹이 불가능하며 세계 126개국에 특허 출원했다고 관련 자료까지 보여줬다.

김씨는 퇴직금 5000만원을 투자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사람을 데려오면 그 사람의 투자금 10%를 다시 가상화폐로 준다는 말에 주위 지인들도 머리 속에 떠올렸다. 기대감에 부푼 탓에 이 가상화폐가 진짜인지, 환전은 되는지 확인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달부터 조사에 들어간 경찰의 확인 결과는 달랐다. 정씨 일당의 광고는 거짓이었다. 정씨 등의 명의로 특허 등록한 정보는 확인되지만 특허 내용이 가상화폐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등록료 미납으로 현재는 소멸된 상태다. 이들이 내세운 보안프로그램은 수학적으로 구현되지 않는 개발자의 단순한 생각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가상화폐를 시중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는 말도 모두 거짓이었다. 가상화폐의 가치를 담보해줄 자산도 없었다.

김씨처럼 가상 화폐에 대한 기대심리와 달리 전문적 지식이 부족했던 50~70대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했다. 투자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5704명은 퇴직금이나 저축, 심지어 빌린 돈으로 투자해 총 191억원을 사기 당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관들은 투자설명회를 찾아다니며 증거를 수집했고 이들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현금과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경찰은 지난 2일 일당을 검거하고 현금 14억5000만원을 압수했다. 또 계좌에 들어있던 102억원을 지급정치 조치했다.

일당 중 정씨와 박씨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됐다. 5명은 불구속 입건됐으며 또 다른 문모씨(36)는 앞서 저지른 유사 범죄로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 관계자는 "이들에 대한 여죄와 추가 피해 여부를 계속 수사 중"이라며 "고수익을 내세운 투자권유는 반드시 사기인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상화폐 범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월에는 비트코인을 모방한 5가지 가짜 가상화폐를 만든 뒤 투자자들에게 '6개월 만에 원금의 3~5배를 주겠다'고 속여 총 611억원가량을 가로챈 사건도 있었다.

베스트 클릭

  1. 1 나훈아 '김정은 돼지' 발언에 악플 900개…전여옥 "틀린 말 있나요?"
  2. 2 "욕하고 때리고, 다른 여자까지…" 프로야구 선수 폭로글 또 터졌다
  3. 3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4. 4 "390만 가구, 평균 109만원 줍니다"…오늘부터 자녀장려금 신청
  5. 5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