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삶은 계란 좋아하우?"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 2017.08.17 04:20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주요섭 作) 속 계란은 값비싼 식재료였다. 고기가 귀했던 이 시절 계란은 단백질 대체재로 아버지와 장남 밥상에만 오르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아저씨, 삶은 계란 좋아하우?" 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옥희가 사랑방에 찾아온 아버지 친구의 밥상에만 오르던 계란 반찬을 단번에 알아챈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장년층의 추억 속 계란도 귀한 음식이다. 어린 시절 형제들과 경쟁하며 계란 반찬을 나눠 먹었고, 소풍이나 기차여행을 갈 때는 꼭 삶은 계란을 챙겼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밥 위에 계란프라이가 있으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먹거리가 다양해졌지만 계란은 여전히 중요한 식재료다. 가격이 저렴한데다 요리법이 다양해 과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양을 섭취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한국인은 연간 1인당 268개 계란을 소비한다. 하루에 0.73개 계란을 먹는 셈이다. 빵, 샌드위치, 토스트, 케이크, 과자, 아이스크림 등 계란을 주재료로 한 식품도 많다.

서민들의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인 계란이 그야말로 수난이다. 지난해 겨울 조류인플루엔자(AI)로 시작된 '계란대란'은 결국 전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공포로 번졌다. 이번엔 가격이 치솟아 카스텔라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미국산 계란을 들여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달부터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계란의 살충제 성분이 국내에서도 검출됐다.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산 달걀과 닭고기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이 확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가 그동안 유통된 계란이 살충제 성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자신있게 발표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곳이 농식품부로부터 '무항생제 축산물인증'을 받은 친환경 산란계 농장이라는 점은 국민들의 분노를 더 키웠다. 정부는 인증제도 관리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다.

정부의 무능이 불러온 참사는 고스란히 유통·식품 업계와 국민들이 떠안았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백화점, 온라인몰 등 주요 유통기업들은 지난 15일 전국 매장에서 계란을 수거하는 등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생란 뿐 아니라 계란이 들어간 샌드위치, 김밥 등 주요 식품도 판매하지 못했다. 16일 정부가 전수조사를 마치고 적합 판정을 내린 농가의 계란에 한해 판매 재개를 시작했지만 내홍은 현재 진행형이다.

판매 중단에 따른 비용 손실은 물론 소비자들의 계란 환불 요구가 잇따라 업무 차질도 상당하다. 그동안 계란 값이 급등해 마음 고생을 해 온 식품업계는 이번 사태로 계란소비를 꺼릴 소비자 마음을 어떻게 돌릴 지가 난감한 상황이다. 국민들은 추석이 코 앞인데 계란을 사도 될 지 혼란스럽다. 정부의 미덥지 못한 대처가 계란을 믿지 못할 식품으로 추락시켰다. 완전 식품 계란은 이제 추억이 됐다.

송지유 산업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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