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중심의 재즈가 잃어버린 생명력을 복원하고 대중성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접근법은 맛깔난 보컬의 영입이다. 반세기 가량 재즈의 중심은 피아노와 색소폰, 트럼펫, 기타라는 선율 악기였다.
보컬이 그 중심에 끼며 변방에서 주류로 올라선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우리는 빌리 할러데이나 엘라 피처제럴드 같은 훌륭한 보컬을 만났고, 악기 못지 않은 재즈 보컬의 힘도 느낄 수 있었다.
재즈의 위기를 얘기할 때, 함께 거론되는 것이 보컬의 부재였다. 그레고리 포터는 위기에 처한 재즈의 구원투수로, 대중성에 가장 근접할 ‘악기’로 다시 회자된다.
포터는 한국의 늦깎이 가수 장사익 같은 뮤지션이다. 40세에 데뷔했기 때문이다. 이제 데뷔한 지 7년밖에 안 된 재즈계에선 신출내기지만, 그를 바라보는 재즈계 시선은 다르다. 늦은 데뷔지만, 이미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겪은 경험이 관록을 보증하고 진정성을 대리한다는 얘기다.
실제 그의 보컬을 처음 듣는 음악 관계자들은 대부분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한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는 “보컬 대부분은 좋은 마이크를 쓰기 위해 브랜드를 따지고 디테일한 장치를 구분하기 마련인데, 포터는 두루마리 휴지를 줘도 목소리가 훌륭할 것”이라며 “신이 내린 훌륭한 악기”라고 평가했다.
포터와 함께하는 연주인들은 우선 따뜻하고 감성적인 그의 음색에 반한다. 첫 음부터 흩어진 연주인들의 감성을 한 데 모으고, 어느 순간 보컬을 향해 모든 악기가 하나의 소리로 뭉친다. 보컬의 흡입력은 노래를 부르는 내내, 그가 한 편의 드라마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기쁘고 슬픈 일들을 얘기하듯 툭툭 던지고, 심지어 “내 마음 이해하니?” 같은 이해를 구하는 심경도 담아낸다.
영화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그가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상’을 두 차례 수상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포터는 음악을 보컬 입장에서만 해석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큰 틀을 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포터가 즉석에서 한 마디 멜로디를 던지면, 베이스가 이를 받아서 연주해 보고 다시 이를 전체적으로 융합하고 조합하는 식으로 음악은 발전한다. 연주자들은 “포터는 노래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듣고 연주하는 아티스트”라며 “늘 큰 틀에서 음악을 짜고 구성한다”고 입을 모았다.
재즈의 미학은 음악학의 최고봉이 자랑하듯 계산하고 학습하는 것이 아닌, 녹여내고 흡입하는 자연스러운 융합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포터는 매번 확인시킨다.
포터는 “내가 흑인이기 때문에 가스펠 창법을 구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일찌감치 벗어났다”며 “감성 위주의 방식으로 내 음색과 창법을 바라봤을 뿐”이라고 말했다. 재즈가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 갈 방법, 포터는 본능적 감각으로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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