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빚 탕감, 도덕적 해이 우려 과도하다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 2017.08.16 04:53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빚 탕감 정책이 논란이다. 사실상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채권 추심의 고통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지만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시그널로 해석돼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하지만 장기·소액연체채권을 탕감해준다고 도덕적 해이 문제가 심각할 것이란 걱정은 과도해 보인다.

정부의 빚 탕감 정책은 크게 2가지로 구성된다. 첫째는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돼 빚 갚을 의무가 사라진 채권을 소각하는 것이다. 채권을 소각한다는 것은 연체기록까지 완전히 삭제해 빚을 못 갚은 사람이 향후 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금융위원회는 이미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금융회사가 보유한 214만명의 소멸시효 완성채권 26조원을 올해말까지 소각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을 정례화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은 금융회사들이 빚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고 이미 손실 처리한 채권인 만큼 빚 탕감도 아니다. 이런 채권은 소각해 채무자의 경제활동 복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더 이득이다. 연체 기록까지 없애면 빚을 못 갚은데 대한 불이익이 전혀 없어 반복적으로 돈을 빌렸다 갚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10년 이상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막혀 불편을 겪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대가는 치렀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이라도 장기·소액연체채권은 탕감해주는 것이다. 이는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고 채무를 없애준다는 점에서 진짜 빚 탕감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위는 이미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40만3000명의 원금 1000만원 이하, 연체기간 10년 이상 장기·소액연체채권 2조원 규모를 소각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금융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금융회사의 장기·소액연체채권까지 정리할 계획이다. 다만 민간 금융회사의 정리 대상 장기·소액연체채권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금융권은 배임 소지를 없애려면 탕감 금액이 원금 1000만원 이하보다 훨씬 더 적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도덕적 해이 논란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장기간 연체된 소액 채권을 소각하는 정책에서 더욱 거세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장기·소액연체채권이라고 무조건 100% 탕감해주는 것이 아니고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꼼꼼히 심사해 빚 탕감율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공공기관에 적용되는 탕감 기준인 1000만원 이하의 빚은 정기적인 소득만 있다면 3년 정도면 갚을 수 있는 규모다. 1000만원도 안 되는 빚을 10년간 못 갚았다는 것은 정말 갚을 능력이 없거나 아예 갚을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금융위의 설명대로 보유 재산과 소득 등을 조사해 상환 능력이 있으면 빚을 받아내고 정말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만 구제해준다면 도덕적 해이로 인한 부정적 영향보다 빚 탕감으로 얻는 이득이 사회 전체적으로 클 것이라고 본다.

한 금융위 전직 관료는 장기·소액연체채권 탕감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일본계 대부업체의 성공 비결을 들었다. “일본계 대부업체가 너무 잘돼 조사차 방문한 적이 있다. 사무실을 깨끗하게 차려 놓고 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푸대접 받던 사람들을 정중하게 대하더라. 돈을 빌려줄 때는 소득이 있는지 따져 소액만 빌려준다. 소득에 비해 빚이 과도하면 아예 갚을 엄두도 못 내고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몇 백만원의 소액이라면 소득만 있으면 웬만해선 대개 갚는다는 것이다.”

몇 백만원의 돈을 일부러 갚지 않으려 재산을 배우자 등 남의 명의로 바꿔 놓고 소득도 없는 것처럼 꾸미고 10년간 추심을 당하면서 버티는 사람은,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위 발표대로 상환 능력만 제대로 심사한다면 장기·소액연체채권 정리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포용적 금융’의 대표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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