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헬조선 혁명이 추구해야 할 정의(正義)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 2017.08.15 05:3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얼마 전까지 젊은이들의 멘토로 추앙받던 인물이 '꼰대'가 되어간다. 그를 멘토로 모셨던 성원은 국가 지도자를 운운했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요즘엔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권력을 지키려 발버둥 치고 있다. 그를 믿고 따랐던 사람들이 말리려 하지만 '벽에 대고 얘기하는 수준'이란다.

멘토와 꼰대의 차이가 뭔가. 결정적인 건 공감과 능력의 유무가 아닐까. 전자는 자기가 할 줄 아는 걸 가르치지만, 후자는 저도 모르는 걸 강요한다.

물론 꼰대는 좀 더 많은 적폐를 안고 있다. 자기 부담을 남에게 떠넘기는데 그치지 않고 남의 기회까지 빼앗는다. 이기(利己)는 악(惡)으로 진화하니까.

꼰대가 상위 계급의식을 가지면 사달이 난다. 주어진 권력을 사유화하여 극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 우는 심정으로 매를 들었다 해도 저 혼자 하는 쇼(?)다. 아래에서 당하는 이에겐 가르침이 아니라 가진 놈의 매질일 뿐이다.

고백하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 헬조선(지옥 같은 우리나라?)이란 지칭에 동의하지 않았다. 올해 마흔이 된 '낀 세대'인데 스스로는 젊은이라고 착각하며 노력하지 않은 친구들의 푸념이 과하다고 속으로 짐짓 잘난 체했다.

이제 진지하게 반성한다. 회장 운전기사가 50만원 더 받기 위해 그런 모욕을 견뎌야 했는지 몰랐다. 한 달에 추가 5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꼰대를 참아줄 욕 값은 분명 아니다.

대장 사모님은 여단장급인지도 최근에야 알았다. 훈련소에서 동기들이 공관병으로 차출되어 갔다면 "좋겠다"며 부러워했던 세대다. 그들이 '여단장급 사모님'께 뜨거운 부침개로 얻어맞고 전자팔찌를 찼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면 헬조선이란 비하는 힘없는 젊은이들이 이른바 권력 가진 꼰대들에게 유일하게 읊조릴 수 있던 정신적 쿠데타가 아니었을까. 지금 시대엔 무력 혁명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전방에서 탱크를 돌려도 '길이 막혀' 서울에 못 온단다.

대신 SNS 통신망으로 확산된 '헬조선'은 실제 혁명의 토대가 됐다. 최순실은 우연스럽게 등장한 게 아니라 무능력한 권력이 곪아 임계점에서 터진 것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취직할 곳이 없으면 해외로 나가라"던 '마리 앙투와네트' 같은 대통령을 사실상 이 젊은이들이 몰아낸 것이다.

헬조선은 혁명의 분명한 동인(動因)이었다. 심각하고 철저한 비인간화를 겪은 이른바 '흙수저' 계급의 의식이 성숙해 우리 역사의 변곡점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혁명이 실패한 쿠데타가 되지 않으려면 객관화된 세계의 독자적인 합법칙성을 인정(Georg Lukacs, 1885∼1971)해야 한다. 법과 제도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는데 여론을 선동하고 모든 가진 자들을 부르조아나 부역자로 규정해 실제 잘못보다 과히 처단하려 한다면 또 다른 꼰대의 교조주의가 될 뿐이다. 스탈린과 김일성이 이 길을 따랐다.

"이재용만 잡으면 된다"던 특검이 12년형을 구형했다. 유아 성폭행범 조두순이 받은 형량이다. 사법부가 균형을 잡지 못한다면 권력은 폭주할 수 있다. 삼성이 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풀이가 정의가 되는 건 훨씬 심각한 문제다. 그건 진짜 헬조선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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