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본부장 임명 나흘만에 자진사퇴…"사과드린다"(종합)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 2017.08.11 19:29

황우석 사태 공식 사과하며 정면돌파 시도했지만 역부족…"국민들에게 큰 실망 안겨드렸다"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 사태에 연루돼 자질 논란이 일고 있는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정치권·시민단체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아온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이 11일 자진 사퇴했다. 지난 7일 임명 이후 나흘만이다. 박 본부장은 임명 뒤 ‘황우석 사태’에 연루된 인물로 알려지면서 20조원에 달하는 R&D를 관장하는 본부장직에 부적격하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과기정통부는 11일 저녁 출입기자들에게 박 본부장이 작성한 5페이지짜리 '사퇴의 글'을 이메일로 보냈다.

박 본부장은 이 글에서 "황우석 교수 연구 조작의 모든 책임이 저에게 쏟아지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일”이라며 "11년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다"고 말했다.

입장자료의 대부분은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태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러면서 박 본부장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사건이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비서관 재직시절 일어났다고 해서 황 교수 논문 사기 사건의 주동자나 혹은 적극적 가담자로 표현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항변했다.

그는 "임기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삶의 가치조차 영원히 빼앗기는 사람은 정부 관료 중 아마도 저에게 씌워지는 굴레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가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며 "국민에게 큰 실망과 지속적인 논란을 안겨드려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어렵게 만들어진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서 과학기술인의 열망을 실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저의 사퇴가 과학기술계의 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박 본부장의 사퇴는 과거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와 관련 잇따라 불거진 자질 논란으로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커진데 따른 판단이다.

박 본부장은 임명 이후 과학기술계 및 정치권,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거센 사퇴 압박에 시달려 왔다. 당초 자진 사퇴할 생각이 없었던 박 본부장은 지난 10일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들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일할 기회를 주신다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으며 일로써 보답하고 싶다”며 자진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구국의 심정으로 일하겠다”며 임기수행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어 황우석 사태에 연루된 데 대해도 11년만에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자숙해도 부족한 사람이 정치 낙하산을 타고 다시 등장해 구국의 심정을 외치고 있다”며 거센 비난이 일었다.

과기계 집단 반발 분위기는 그가 해명한 다음날인 11일에도 서울대·시민참여연구센터·야당 등에서 이어졌다. 서울대 교수들은 "황우석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었지만 반성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었다"며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박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2006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을 막지 못한데 따른 책임을 지고 청와대 보좌관에서 물러났다.

당시 정보과학기술보좌관직을 맡았던 박 본부장은 황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2004년 황 교수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려 구설에 올랐다.

또 본인 전공인 식물생리학과 관계가 없는 과제 2건(사회적 영향평가·윤리적 고찰)으로 황 전 교수로부터 연구비 2억5000만원을 지원받아 부적절 처신 논란을 자초했다.

이 때문에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R&D(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예산 심의·조정 등의 권한이 주어지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과학기술계 안팎에서 사퇴 압박을 받아 왔다.

다음은 박 본부장 '사퇴의 글' 전문

이글을 쓰면서 제가 제목에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사퇴한다” 라는 제목을 붙이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지명 받은 후 4일 동안 본부장이라는 직책명을 제 이름 앞에 감히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저를 본부장으로 지명해주시고 대변인 브리핑으로 또 다시 신뢰를 보여주신 대통령께 감사 드립니다.


지명 후 곧이어 MBC PD수첩의 전 진행팀 등을 비롯한 몇 곳에서 문제제기가 시작되면서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11년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습니다.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한 책임자로서 엄청난 문제가 생겼는데 왜 사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책임자로서 저도 수백번 무릎꿇고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과학기술이라는 배의 항해를 맡았는데 배를 송두리째 물에 빠뜨린 죄인이라는 생각에 국민 모두에게 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묵묵히 모든 매를 다 맞기로 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어떠한 사과도 귀기울여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연구자로서 과학계의 자체적인 검증체계인 “연구과제 선정과 논문 게재”라는 결정된 내용을 존중합니다. 특히 저는 무엇보다 연구자의 실험결과를 믿습니다. 약간 의아한 부분이 없지도 않았고 직접 질문도 해보았지만 황우석 박사의 논문과 실험결과를 믿었습니다.

지금도 정부의 연구방향 설정에서 국민의 여론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년전 황우석 박사는 어린이 책으로 전기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스타과학자였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잘 진행되어야 하는데 정부지원 부족으로 컨테이너 건물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것부터 정부지원 부족을 질책하는 기사가 일간지 1면 기사로도 실렸습니다. 각계에서 경쟁적으로 황박사 연구를 지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줄기세포 사업단도 만들어 졌습니다. 생명과학계에서 황우석 박사의 연구지원에 불만도 있었지만 결국 여러 정부연구과제와 시설 등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아 나갔습니다.

황박사의 연구가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제가 보좌관으로 일하기 훨씬 전인 10여년 전부터였습니다. 제가 황박사를 만난 것은 1999년경 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주홍글씨의 씨앗이 잉태되었습니다. 저는 과학기술 운동을 하는 보잘 것 없는 지방대 교수이었고, 황박사는 스타 과학자였습니다. 제가 유전자변형작물에 대한 심층 연구보고서를 쓰고 난 후 이 내용의 전문성 때문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황우석 박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는 포괄적인 책임을 통감했습니다. 곧장 사표를 제출하였지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엄청난 내용의 충격 때문에 거의 2개월 이후 사표가 수리되었습니다. 청와대 참모로서 정부의 과기정책 담당자로서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습니다. 가장 책임을 크게 지는 방법이고 가장 크게 사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이 제 임기 중에 일어났다고 해서 제가 황우석 논문 사기 사건의 주동자나 혹은 적극적 가담자로 표현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우석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에 대통령을 모시고 간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2003년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저는 보좌관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실험실 당사자조차도 제가 모시고 간 것으로 쓰고 있습니다. 저에게 덧칠을 하기 위해 허위의 내용도 만들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제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 받은 이후에는 한때 공동연구진이었던 이유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진을 격려하고 연구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했습니다. 저는 청와대에서 이 업무를 담당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부서에서 황우석 연구의 관리 업무를 진행하였습니다.

저는 연구비 수주에 늘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 연구자로서 스타과학자로 인해 연구 현장의 연구비 몫이 줄어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고과학자 연구비 재원으로 다른 재원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내어 해당 부처로 이관해주기도 했습니다.

외국의 저명한 줄기세포 연구자들도 모두 감탄할 정도의 연구가 조작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황우석 교수 연구 조작의 모든 책임이 저에게 쏟아지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일입니다.

혁신본부장으로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혁신체계를 만들어 연구현장과 기업현장에서 혁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새로운 산업 영역이 개척되고 확대되어 고용을 통해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나라가 더욱 나라답게 변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저의 열정을 바쳐보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꿈이 있었습니다. 과학자가 정부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정치교수가 되지 않는 꿈입니다. 다시 연구 현장에서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정책과 과학 연구를 넘나들 수 있는 정책광이 되고 싶었습니다.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서는 1차적으로 전공 연구에 몰두하였고, 시간을 할애하여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했습니다.

대학 1학년때부터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을 가졌고 사회의 과학기술운동에 거의 40년간 몸담았습니다. 이번 계기로 제가 노력했던 꿈과 연구 목표 그리고 삶에서 중요시 여겼던 진정성과 인격마저도 송두리째 매도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까지 임기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삶의 가치조차 영원히 빼앗기는 사람은 정부 관료 중 아마도 저에게 씌워지는 굴레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가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에게 큰 실망과 지속적인 논란을 안겨드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서 과학기술인의 열망을 실현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저의 사퇴가 과학기술계의 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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