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폐지는 시대적 흐름…고교학점제가 대안"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 2017.08.07 05:00

[머투초대석]취임 3주년 맞은 조희연 서울교육감

조희연 교육감 인터뷰

새 정부 들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와 고교학점제,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폐지, 고교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등 각종 교육 제도 변화가 줄줄이 예고된 가운데 주무부처인 교육부 만큼 주목받는 곳이 있다. 수도 서울의 교육을 책임지는 서울교육청이다. 최근 석 달 간 시교육청은 자사고·외고 재지정, 국·공립유치원 취원률 확보 등을 하나 둘 발표하면서 새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의 지표를 알 수 있는 바로 미터가 됐다. 그러면서 조희연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 못지 않게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인사로 급부상했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시교육청 9층 교육감실에서 조 교육감을 만났다. 구석구석에 놓인 소품을 소개하는 목소리에서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졌다. 그는 “전율하는 나침반처럼 자기절대화에 빠지지 않겠다”며 취임 3주년의 각오를 다졌다.

◇“교육 혁신? 민주적 학교 문화 조성 먼저” = 인터뷰는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먼 산을 담아내던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20여 년 전 문화센터에서 사진을 좀 배웠어요. 자식들 어릴 때 모습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취미였죠. 사진 수업만큼 미래 역량을 키우는 데 좋은 게 없습니다. 사진기만 있으면 누구나, 어디서든, 심지어 쓰레기 더미에서도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거든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 똑같은 상품을 찍어내는 것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사진을 통해 키운 미적 감수성이 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해요.”

사진 수업 얘기는 수업 혁신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시교육청이 펼치고 있는 ‘중학교 협력종합예술 사업’이었다. “내년부터는 서울 모든 중학생들이 연극, 영화, 뮤지컬 중 하나를 수업 시간에 소화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강사 파견이나 다양한 수준의 공연 시설을 만들고 있어요. 이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을 ‘협력하는 괴짜’로 키우는 게 제 목표입니다. 독창성과 협동심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 혁신은 새로운 학교 형태에 대한 구상으로 확대됐다. 조 교육감은 경기도에서 시작된 혁신학교를 늘리는데 이어 고1 학생들이 위탁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오디세이 학교’를 만들었다. 다만 성과에 대해 교육계 의견이 분분하다. 경기도와 달리 혁신학교 전파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도 있다.

조 교육감은 이에 “혁신학교란 이름은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한다”며 교육혁신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혁신학교를 얘기할 때마다 ‘학교 혁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합니다. 그 답은 역동적인 교사, 자기주도적인 학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교사와 학생이 많아지려면 학교문화가 민주적으로 변하는 게 우선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문화 혁신의 방향은 개인의 자율성을 살리는 데에 맞춰집니다. 학교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혁신학교는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개혁을 선도하는 일종의 시범학교일뿐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처럼 변화해 혁신학교란 이름이 없어져야 합니다. ”

조희연 교육감 인터뷰


◇“자사고·외고 폐지 시대적 흐름, 역행 쉽지 않아”= 학교 체제 개편에서 자사고·외고 폐지 문제가 빠질 수 없다. 전국에서 자사고가 가장 많은 서울은 문제의 중심에서 찬반 양측의 항의 세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정부의 폐지 방침이 나온 직후인 지난 6월 서울교육청은 4개 자사고·외고에 대해 재지정을 결정했다. 결정 전까지 자사고 학부모들과 학교 관계자들은 재지정을 촉구를 위해, 교육시민단체들은 반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성명문을 발표했다.

조 교육감은 “자사고, 외고가 학생들이 자신의 취향과 소질에 따라 교육과정 선택권을 갖게되는 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폐지가 해답임을 분명히했다. 부작용에 대한 대안으로는 고교학점제를 들었다. “일류대에 들어가기 위해 아이들이 자기학대적으로 공부하는 타율적인 학습동기부여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봅니다. 큰 틀에서는 수직서열화 된 학교 체제를 바꿔야 합니다. 정부가 시행령을 바꿔 선발시기를 일반고와 동일화하는 동시에 성적에 관계 없이 학생을 선발하는 체제가 병행돼야 합니다. 다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이해당사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대안이 과목선택권을 확장하자는 이른바 고교학점제입니다. ”

서울은 지난해부터 고교학점제와 비슷한 ‘개방-연합형 교육과정’을 운영 중이다. 개방형 교육과정과 연합형 교육과정을 합친 모델이다. 이 중 개방형 선택 과정이 학생들이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도록 하는, 고교학점제의 초기모델이다. 조 교육감은 고교학점제 정착을 위해선 “여러 전제가 성숙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님들의 평가권을 보장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자율과 책무성을 부여받아야 교육 혁신, 특히 맞춤형 교육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수강생이 적은 학생들이 듣는 소인수 과목도 개설이 가능토록 강사비 지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쓸 사물함을 설치하는 등 홈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수강신청이 자유롭도록 시스템도 구축돼야 하고요.”

나아가 사회 전체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학교는 교실 밖에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사회가 모두 한 마음으로 도와야 합니다. 특히 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드론 수업을 하고 싶은데, 이를 위해 교육청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 드론학과를 산업정보학교에 만들어주기 보다는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이 교육과정을 짤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라는 겁니다.”


◇“사립학교, 자성 노력 필요…숭의초 직위해제 조치 환영” = 얼마 전 시교육청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재벌 손자가 연루된 숭의초 학교폭력 은폐 사건이다. 시교육청은 연루 교원들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고, 인사권을 쥔 숭의학원은 직위를 해제시켰다. 조 교육감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사건이 사학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눈높이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단호한 조치가 건전 사학의 명예를 보호할 겁니다. 일부 사학은 학부모에게 돈 받은 교사를 감싸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사학들이 사학 전체의 명예를 더럽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립학교법이 개정돼 교육청이 사립학교 교사에 대한 징계 권한도 가져와야 합니다. 이런 부분 개혁이 전면 개혁을 막을 수 있어요. 사학이 도도해진 국민의 눈높이를 도외시하고 과거로 돌아가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자사고에 대한 개혁 요구가 한참 빗발쳤던 2014년에 자사고가 추첨선발, 수시선발 등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지금처럼 폐지 논의까지 오진 않았을 겁니다. ”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아들이 외고 출신이란 이유로 외고 옹호론자들에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조 교육감이다. 최근에는 자사고·외고 폐지를 주장했던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간부가 자식을 특목고에 보냈다는 이유로 같은 비판을 들어야 했다.

“항상 죄송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고교 진학은 과거의 일이지만 어쨌든 공적책무를 담당하는 입장에선 상당히 무거운 일입니다. 개인적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교육감으로서 (자사고·외고 폐지에 대한) 책무성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내로남불’이란 비판에 숨겨진 평등교육에 대한 열망, 개인적인 일과 공적책무 모두 철저하게 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고 비판을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제도 개선 노력과 기존 제도 내에서 이뤄진 개인의 선택을 등치 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 아이를 특목고에 보낸 사걱세 간부 역시 비판을 충분히 받을 수 있지만 그동안 사걱세가 교육개혁을 위해 애쓴 부분까지 폄하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정권이 바뀌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징계를 중단하고 전임자 휴직까지 인정해 “태도가 변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는 “늘 항변하고 싶었다”고 했다.

“국민의식이 촛불정국 전후로 바뀌었는데 이를 감안하지 않는 것도 국민적 요구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어요. 촛불시위에서 세월호 참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비판 의견이 논의됐고, 이런 비판에 참여해 시국선언한 교사에 대해 동일한 징계 잣대를 들이대는 게 적절치 않다고 봤습니다. 법 해석 역시 정권과 상관없이 바뀔 수 있습니다. 호주제, 간통제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죠. 국민들의 상식 변화에 맞춰 법 해석이 거시적으로 변하는 겁니다.”

그는 교육감실 한 귀퉁이 액자로 보관하던 고(故) 신영복 선생의 글귀를 가리키며 남은 임기 1년의 각오를 설명했다. ‘여윈 나침반의 바늘 끝이 떨고있는 한, 우리는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는 글이었다.

“나침반의 떨림은 자기절대화를 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다양한 시선에 대해 개방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보수론자이자 제 지도교수님인 송복(연세대 명예교수) 선생님을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는 치열함이 불가피하긴 하지만 그와 더불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여유와 너그러움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도 힘든 일이란 걸 인정합니다.(웃음)”

조희연 교육감 인터뷰


◇조희연 교육감은… 1956년 10월 전북 정읍 출생. 중앙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중 유신헌법 및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독재반대 시위에 가담한 죄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재정 경기교육감과 성공회대 설립을 주도하며 1990년부터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했다. 1994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해 초대 사무처장을 지냈고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의장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해왔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 서울교육감 선거에 출마,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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