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엄마의 사랑이 그렇긴 하지만, 작가가 자식에 대한 사랑을 ‘글’이라는 무기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수일지도 모른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작가는 이렇게 항변한다. 그것 역시 인간 보편의 삶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베스트셀러 ‘미실’을 비롯해 ‘논개’, ‘열애’, ‘탄실’ 등을 통해 역사 속 인물의 생을 아프거나 날카롭게 묘사해 온 김별아(48) 작가의 예리한 펜은 최근 내놓은 서간문 ‘스무 살 아들에게’에서 쉽게 무뎌졌다.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따라가기 위해 각종 추리적 논거를 앞세운 치밀한 서사는 온데간데없고 이성의 흔적을 거세한 신파 같은 감정의 조각들만 편지에 알알이 맺혀있다. 감성을 철저히 배격하는 작가의 문체를 기억한다면 ‘파격’에 가까운 민낯을 내보인 셈이다.
“아들 낳고 인간 됐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지난 20년간 아들이 제 인생의 혁명적 계기가 된 거죠. 저밖에 모르던 이기적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소리 없이 가르쳐 준 멘토 역할을 했다고 할까요?”
작가와 아들 혜준은 ‘특별한’ 모자(母子) 관계다. 아들은 아집과 독선이 강했던 작가에게 언제나 말벗이 되어준 유일한 친구인 데다, 부모로서의 권위나 선험자로서의 지위 같은 일방적 저울질에서 수평을 유지해준 동료였다. 작가는 “아들은 내 분신”이라고 했다.
캐나다에서 외국 생활을 할 때도, 2년간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도 아들은 엄마 곁을 지켰다. 인생의 위기가 놓일 때마다 두 사람은 ‘전우’ 같았다는 것이 엄마의 기억이다.
책은 늘 인생의 고락을 함께하던 아들이 까까머리로 입대하자, 그 이별의 순간들을 눈물과 고통의 감정으로 정리한 기록들이다. 첫돌 때 쓴 편지 3편과 입대한 날부터 훈련소 수료식까지 써 내려간 38편 등 모두 41편의 편지가 실렸다.
‘내 핏덩이, 내 살덩이, 내 숨결’이라며 첫돌을 맞은 아기에게 보낸 축복의 메시지는 20년이 지나 입대한 순간에도 “숨 쉬는 순간마다 네가 그립다”며 깊은 애정을 놓지 않는다.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유언장 같은 느낌으로 이 편지를 적었어요. 제가 없을 때, 저를 기억하거나 제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사랑을 기억하고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길 바랐던 거죠.”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부모는 ‘만만한 부모’다. 반항해도 누르지 않고, 서로 귀 기울여야 아이가 자기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서로 밀고 당기는 만만한 대화로 작가는 아들한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칭찬까지 들었다. 아들의 칭찬 멘트를 전하는 순간에, 작가의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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