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은 국정 운영의 출발점이자 동력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반 행보는 여기 기댄다. ‘촛불 민심’을 강조하는 것은 ‘높은 지지율’을 믿는다는 선언이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를 웃돈다. 지난 7일 발표한 한국갤럽 기준 문 대통령 지지율은 83%로 여당 지지율(50%)보다 훨씬 높다. 정권 초라는 특수성을 고려해도 기대 이상의 고공 행진이다. 역대 대통령 지지율 고점을 비교해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83%), 김대중 전 대통령(71%), 노무현 전 대통령(60%), 박근혜 전 대통령(60%), 노태우 전 대통령(57%), 이명박 전 대통령(52%)순이었다.
지지율이 마냥 높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꺾이게 돼 있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도 질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지키려하는, 지키고 싶은 선이 있다. 전문가들은 흔히 밥자리에 빗댄다. 70%대 지지율을 보자. 4명이 한 밥상에 앉았는데 반대나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수준이다. 모두 찬성하거나 아예 입을 열지 않는 ‘샤이(shy)’ 한명이 존재하는 정도의 지지율이다.
60%대도 비슷하다. 3명이 술잔을 기울 때 과반이 지지의 목소리를 내는 숫자다. 다른 한명이 반박하더라도 두 사람이 협공을 가한다. 이성과 감성으로 몰아붙인다. 반대로 30%는 마지노선이다. 3명의 술자리에서 협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어떤 설명도 먹히지 않는다. 반등의 기회도 잡기 힘들다. 이게 이어지면 25%선이 뚫린다. 4명이 앉은 테이블에서 지지 목소리가 사라지는 상황이다. 지지율도 관성의 법칙을 갖는다.
문 대통령의 숫자 80%는 현재 밥자리, 술자리의 여론을 뜻한다. 그 사이 문 대통령의 또다른 숫자 41.08%(대선 득표율)는 잊혀진다. 집권 여당의 숫자는 50%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의 숫자이기도 하다. 국민의당을 향한 추 대표의 강한 발언, 한국당을 겨냥한 우 원내대표의 압박 등은 이 숫자의 힘이다. 반면 야당의 숫자는 ‘100%-여당(50%)=50%’가 아닌 ‘100%-문재인(80%)’에 가깝다.
국민의당 숫자를 보자. 1년여전 치러진 총선 때 국민의당이 얻은 비례대표 득표율은 26%였다. 민주당보다도 1%포인트 앞섰다. 의석수에 비해 발언에 힘이 실렸던 이유다. 반면 지금은 4%다. 추 대표의 강한 발언이 이어져도 국민의당을 향한 동정여론조차 생기지 않는다. 제1야당의 숫자는 10%다. 보수정당 지지율로는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야당은 다른 숫자를 본다. 국민의당은 40석(의석비율 13.4%)을 여전히 부여잡는다. 자유한국당은 107석(35.8%)이 자신의 숫자다. 선거를 통해 얻은 소중한 결과지만 현실과 괴리가 엄연히 존재한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간 미묘한 입장차도 여기서 비롯된다. 홍 대표는 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대선 때 자신이 받은 지지율(24%)에도 못 미치는 당을 이끄는 대표의 현실 인식이다. 지금은 여당이나 대통령에게 반대할 최소한의 수준도 안 된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정 원내대표는 문재인의 80%, 민주당의 50%는 허울뿐이라고 본다. 그는 '120석(민주당) VS 107석(한국당)' , 또는 '120석(여당) 대 173석(야당)'만 강조한다. 결국 문 대통령은 80%의 숫자를, 야당은 자신들의 의석수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과 여당은 ‘협조’를, 야당은 ‘협치’를 외친다. “소신껏 해라” “양보해라” 등 상충된 제언 속 듣고 싶은 것만 인용한다.
정답은 없다. 부여잡은 그 숫자를 믿는 만큼 책임지면 된다. 다만 숫자는 변한다. 자신의 숫자만 맹신하는 쪽이 더 많은 것을 잃는다는 교훈을 너무 쉽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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