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꽃에서 꽃으로 스민 슬픔을 베끼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 2017.07.08 07:50

<108> 김도연 시인 ‘엄마를 베꼈다’

온몸에 꽃을 들인 엄마가 있다. 엄마의 꽃을 물려받은 딸이 있다. 꽃의 슬픔까지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인 딸은 시인이 되었다. 2012년 ‘시사사’로 등단한 김도연(1969~ )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엄마를 베꼈다’는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슬픔과 “또 다른 나를 살기 위해 상처를 견디”(이하 ‘시인의 말’)며 살아가는 “시답잖은 위안”의 “반문”과 같다.

몸에 슬픔의 꽃이 피어 있는 줄도 모르고 별을 따고 파랑새를 잡기 위해 고향집 “파란 대문”(이하 ‘엄마를 베꼈다’)을 나선 시인은 “도시의 별은 너무 높이 떠 있”어 도저히 딸 수 없었기에 “내 슬픈 눈망울에 별을 그려준다는 남자와/ 살림을 차”린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내 꿈을 대신 이뤄줄 수는 없는 법. 결국 “세월은 저희끼리만 행복”하고 시인은 방황한다. 시인의 첫 번째 슬픔이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면 두 번째 슬픔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고 남자(가족)를 통해 이루려 했다는 것이다.

온몸으로 꽃을 피우다
와르르 억장 무너지는 슬픔의 본성 때문에
먼 산을 향해 입술만 달싹거린다 모두들
이렇게 머물러 있는 이곳
여기는
묵정밭을 닮아 천백 일 일하고도
하루가 지나도록 밭을 갈아야 허공에 헛손질하는 날들을
떠나보낼 수 있다고

깊은 한숨에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찾아
우리는
너무 멀리 와 있다

별들은 서로의 호칭을 부르다가 서로를 버텨내겠지

밀어내는 슬픔과 밀려오는 슬픔이 자꾸 늘어나는 것을
온전히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인지
떠나갈 것들 앞에 햇살은 앞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질겅질겅
슬픔을 씹어대고 있다

겨울과 가을이 엎치락뒤치락 천일의 시간을 수놓고 있는데
기억을 잊은 파랑새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슬픔 하나를 부리에 물고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지금 당신은
그 먼 곳에서 번쩍
두 손 흔들며 나를 부르시겠죠?
- ‘슬픔을 덧칠한 슬픔에게’ 전문

설상가상, 마음의 의지처인 엄마마저 곁에 없다. “깊은 한숨에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찾아” 헤맨 시인은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와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허공에 헛손질하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밀어내는 슬픔과 밀려오는 슬픔”의 나날이 길어질수록 시인은 “적막을 닮아간다”(이하 ‘아무도 모르게 나이가 들어갈 무렵’). “아무도 모르게 나이가 들어갈 무렵” “슬픔의 본성”인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먼 곳에서 번쩍/ 두 손 흔들며 나를 부르시”는 엄마는 “외로움을 견디는 나의 별서”(‘나의 별서’)나 “붉은 고추보다/ 더 바싹/ 말라가고 있는 고추벌레”(이하 ‘고추벌레’)와 같은 존재다. 염천에 “고추씨만 파먹고 있”는 엄마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나’와 어느새 엄마의 나이가 되어 똑같이 염천에 고추씨를 파먹고 있는 ‘나’는 어느새 하나가 된다. 염천은 슬픔이나 고통, 상처 등 내적환경과 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외적 환경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참 아픈 단어다.

하 수상하게몹시 또렷한 의식

그러나


무언가 참견하고 싶어져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기도 하는


꽃을 버린 수선화가
더 충만해 보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 아니냐고
되살리고 싶은 기억들만
떠오르는

쉰,
수선화의 꽃그늘이라고 쓴다
- ‘쉰’ 전문

엄마가 “알듯 모를 듯 혀”(‘엄마를 베꼈다’)를 차며 “언젠가 세월이 알게 해줄 것”이라는 나이, 쉰이 된 시인은 별을 따는 것도 파랑새를 잡는 것도 다 부질 없음을 깨닫는다. 쉰에 이르러 의식은 또렷해지고, “무언가 참견하고 싶어져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다가 “꽃을 버린 수선화가/ 더 충만해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 아니냐고” 스스로 묻는다. 시인은 비로소 몸 안에 고여 있는 슬픔을 내보내고 “되살리고 싶은 기억들만/ 떠”올리려 애쓴다.

“서른아홉과 마흔아홉 사이에 앉아 있던 그녀”(이하 ‘9’), 즉 불길하다는 아홉수(9)를 넘기고 쉰 살이 된 시인은 “고뇌하는 수선화 9”를 넘어 “수선화의 꽃그늘”에 든다. 수선화가 자아를 상징한다면 시인은 근원적인 슬픔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여 기쁨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뜬눈으로 불면증을 견”(‘스스로 만든 후회’)디고, “꿈처럼 견뎌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수취인불명’)임을 깨달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몸 안의 꽃을 피우고 파랑새를 잡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시를 통해 몸 안의 슬픔(상처)을 치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춥고 남루”했던 세월을 견디고 “눈물 한 방울에 시를” 새겨 슬픔을 넘어 기쁨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인은 “아프니까 그래요,/ 아프니까 자꾸”(‘그치지 않는 별’)라 말하지 않고 슬픔의 객관적 거리에서, 엄마 대신 ‘나’를 베낀 농밀한 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창틀에 비친 내 지난한 그림자는 춥고 남루하지만
눈물 한 방울에 시를 새기며
서럽지 않게
기쁨에 도달할 수 있기를
- ‘합평’ 부분

◇엄마를 베꼈다=김도연 지음. 문학의전당 펴냄. 136쪽/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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