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향해 가는 삶, 몇 년을 살든 순간이 일생인 것처럼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 2017.07.01 07:32

[줄리아 투자노트]

폴 칼라니티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를 1년 남겨 놓았을 때 암 세포가 자신의 폐를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제 부유하고 안락하게 펼쳐질 삶의 정상을 바로 눈 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는 1년반 뒤 36살 젊은 나이에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미완성의 책 한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20년은 의사이자 과학자로, 20년은 작가로 살기를 원했다, 이 계획은 그의 육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신기루가 됐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힘들어 했다. 3개월밖에 못 산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1년이 남았다면 책을 쓰고 10년이 남았다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텐데, 남들보다 빨라 죽을 것이란 사실은 확실한데 남은 시간을 모르니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 그의 주치의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실히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공부 하느라 미뤘던 아기를 가졌고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으며 노후에나 쓰려던 책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워 혼란 속에 있을 때 그를 일으켜 세웠던 것은 프랑스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나아갈 거야"란 말이었다. 그는 이 구절을 머리에 떠올리며 건널 수 없는 불확실성의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죽는 순간까지는 살아 있기에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불확실성의 바다가 갈라지며 드러났다.

그는 폐암 선고를 받기 전이나 받은 후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과 그런데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똑같다고 말한다. 다만 폐암 선고 뒤엔 죽음을 좀더 분명히, 절실히 느끼게 된다는 점만 다르다. 그러니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은 사람이나 받지 않은 사람이나 죽음을 안고 산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를 읽으며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폴이 레지던트 과정에 복귀한 것이 잘한 선택이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의 주치의도 그가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겠다고 하자 “그게 당신에게 중요한 일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폴은 자기 인생의 1/3을 바친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고 더 이상 몸이 허락하지 않을 때까지 다른 레지던트와 똑같이 당직을 서며 수술을 집도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은 클럽에 가서 신나게 춤을 추며 놀거나 친한 사람들과 만나 술 마시며 떠들거나 아쉬웠던 여행을 떠나 세상 구경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런 육체의 쾌락이나 안목의 정욕을 채우는 것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먼지처럼 사소한 것이다. 죽음 앞에서 원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고 그 중요한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역설적인 것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이 평소에 바쁘다고 소홀히 했던 가족과 종종 불평했던 일을 비롯한 일상이란 점이다. 그래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온 그 일상의 삶을 지속하며 가치 있으나 바쁘다고 미뤘던 일을 마무리하기를 원한다. 폴이 레지던트로 해왔던 수술을 계속 집도하며 아기를 갖고 책을 쓰려 했던 것도 자기가 그 때까지 해왔던 일상과 가족, 미뤘던 꿈이 가장 중요했음을 죽음 앞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끝이 찾아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초점이다. 모든 인생은 결국 죽음으로 흘러간다. 게다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고 한다면 방향은 큰 의미가 없다. 방향은 시간의 개념을 포함한다. 방향의 중요성을 말할 때 우리가 진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선, 향상, 성장 등 시간에 따라 더 나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과 비교할 내일을 알 수 없다면 방향은 힘을 잃는다.

반면 초점은 매 순간순간의 일이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할 때 진짜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죽음에 직면해 남는 것은 살아온 순간뿐이다. 그러니 내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 불확실한 삶에서 최선은 한 순간, 한 순간을 가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춰 채워나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어떤 결심)는 이해인 수녀의 고백처럼 몇 년을 살든 우리 인생은 한 순간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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