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사랑을 나눈 뒤 아파트에 갇힌 '그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7.07.01 06:27

[히스무비] ‘베를린 신드롬’…폐쇄적 공간에서 낯섦이 잉태한 사랑의 독점욕

호주의 사진작가 클레어(테레사 팔머)는 영감을 얻기 위해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베를린 남자 앤디(막스 리멜트)에게 매력을 느낀 클레어는 그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매너있고 부드러운 그와 결국 하룻밤을 보낸 클레어. 다음 날 영어 교사인 앤디가 출근한 뒤 클레어는 어찌된 영문인지 밖에 나갈 수가 없다. 창문은 열리지 않고, 현관은 꼭 잠겨있다.

클레어는 전날 잊고 주지 않았다는 열쇠를 앤디로부터 건네받았지만, 다음 날 사용할 수 없다. 클레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금’된 것이다.

영화는 남성판 ‘미저리’ 같다. 인기 작가를 유혹해 집에 감금한 뒤 자신의 욕망에 맞춘 삶을 강요하는 ‘미저리’의 여자 주인공처럼, 이 영화 역시 낯선 여성 관광객을 유혹해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맞춰 타자를 수동화하는 과정을 싣는다.

하룻밤 달콤한 사랑을 나눈 뒤 앤디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낯선 채로 영원히 같이 하고 싶어. 익숙해지면 추악한 꼴을 결국 드러내야 하니까.”

‘낯섦’은 앤디가 사는 삶의 추동이다. 그 근원적 배경을 따라가면 자신과 아버지를 버린 어머니가 숨어있다.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앤디의 속마음엔 ‘낯선’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 복수심과 돌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안타까운 측은함이 동시에 배어있다. 외딴 아파트에서 인자한 교사의 공적 얼굴과 다른 모습으로, 복수심을 근원적 정서로 사랑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것이다.


막힌 공간에서 탈출하려는 클레어는 몇 번의 실패 뒤 공포심 때문에 범죄자에게 호감을 가지는 ‘스톡홀름 신드롬’처럼 베를린 신드롬에 빠진다. 아버지가 죽은 뒤 앤디와 동물적 사랑을 나누는 클레어는 베를린 신드롬의 지울 수 없는 이정표로 남을 뻔했다.


영화는 주인공의 탈출을 서둘러 돕지 않는다. 느리고 답답할 정도로 폐쇄된 공간에서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법 긴장감 있게 녹여낸다. 그런 장면을 투시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언제나 드리울 수 있는 일상의 공포처럼 현실의 재연 같다.

다만, 마지막 탈출의 영리한 비법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듯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신이 문제를 해결한 듯한 수법)적 연출이나 피해자의 별다른 복수가 도드라지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호감 가고 매력적인 사람은 그 진정성이 의심되고, 까칠한 이는 순수하고 선한 의지의 상징인지 영화는 우리가 흔히 인지하는 ‘인간의 보편적 역설’에도 주목한다.

호주 여성 감독 케이트 쇼트랜드가 연출하고 호주 출신 배우 테레사 팔머가 주인공으로 출연해 호주 스릴러의 새로운 느낌을 맛볼 수 있다. 6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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