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바퀴벌레 이론과 오너리스크

머니투데이 송기용 증권부장 | 2017.06.28 04:26
증권가에 '바퀴벌레 이론(cockroach theory)'이라고 있다. 만약 부엌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면 찬장이나 싱크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는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떼를 이뤄 사는 바퀴벌레의 습성에 비유해 증시에서 어느 기업의 나쁜 정보가 노출될 경우, 더 많은 악재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활용된다.

바퀴벌레는 통상 기업의 부진한 실적을 상징하지만 오너, 전문경영인(CEO)의 부도덕성과 무능 역시 바퀴벌레다. 오너리스크가 기업의 앞날에 파멸의 검은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바퀴벌레를 말하는 건 요즘 오너들이 말썽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곳곳에서 주주들이 날벼락을 맞고 있다.

7개월째 코스피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해 전인미답의 2400 고지에 바짝 다가섰다. 많은 주주들이 대박을 터뜨렸다.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 삼성전기, LG전자, LG이노텍 등은 주가가 지난 1년간 100% 안팎 급등했다. R&D(연구개발) 등 끊임 없는 경쟁력 강화를 통해 4차산업, 혹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리더로 나선 기업들이다.

반면 오너리스크에 울상인 기업도 상당수다. '갑질' 논란을 일으킨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가맹점주에게 비싼 가격에 치즈를 공급하고, 일부 탈퇴 점주의 매장 인근에 직영점을 열어 자살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70세의 정 회장은 26일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사과하고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검찰 수사압박과 비난여론에 시달린 탓인지 백발의 정 회장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 경비원 폭행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전력을 고려하면 화를 자초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피해는 정 회장만 본 게 아니다. '보복 출점'을 계기로 불매운동이 거세져 점주는 물론 애꿎은 주주들에게도 불똥이 튄 것이다. 실제로 검찰 압수수색 사실이 공개된 22일 미스터피자(MP그룹) 주가가 12% 급락했다.

갑질 논란 외에 경영승계, 기업분할 등에서 오너들의 빗나간 판단도 주주들에게는 악몽이다.


재계 30위로 성장한 하림은 30일 최상위 지주회사인 제일홀딩스 상장을 앞두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지배구조를 완성하는 중차대한 일이지만 편법승계 논란으로 흥행 불발이 우려된다. 김홍국 하림 회장이 26살의 장남에게 그룹 지배권을 편법 승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새 정부 첫 개혁 대상으로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CU로 알려진 BGF리테일은 8일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기업분할을 공시했다. 지주사 전환 결정은 주가 상승요인이지만 BGF리테일은 거꾸로 공시 후 25% 급락했다.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분할비율이 시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은데다, 오너 일가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지분을 시장가보다 9% 낮은 가격에 팔아 고점 논란에 불을 붙였다.

최근 오너 이슈가 부각되는 것은 새 정부의 정책과 관련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투톱의 대기업집단(재벌) 개혁 의지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선진국 문턱에서 아직까지도 지배구조 문제와 갑질로 표현되는 오너의 전횡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는 건 너무도 때늦은 감이 있다.

올 들어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10조원을 순매수했다. IT를 중심으로 한 실적 호전이 배경이지만 새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한몫 한 게 사실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실적과 지배구조 개선, 두 바퀴로 주가가 3000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고, 가치투자를 대표하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기업지배구조가 좋아지면 주가가 두 배 뛸 기업이 여전히 많다"고 주장했다. 두 배까지는 욕심일지 모르지만 더 이상 오너 갑질에 피 멍드는 주주는 없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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