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현상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었는데, 그 중 핵심적인 원인이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에 있었습니다. 당시 연준은 매번 회의 때마다 금리를 쉼 없이 올렸지만, 매번 회의 때마다 "신중하게 올려 나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연준은 매번 회의 때마다 0.25%포인트씩, 지극히 예측 가능하고 기계적인 금리인상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정책금리는 매번 0.25%포인트씩 인상되었지만,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두려움)은 거의 전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논스톱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는 긴축되지 않았고, 달러는 약세를 이어갔고, 한국과 같은 신흥국들로 자본이 몰려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역설적인 현상을 매개하는 장치가 장기금리에 적용되는 '기간 프리미엄'(또는 텀 프리미엄)입니다. 친구가 나에게 "내일 줄테니 10만원만 빌려달라"고 한다면 크게 고민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10만원을 10년간 빌려달라"고 한다면 좀 꺼려질 겁니다. 너무 기니까요.
그래서 돈을 길게 빌려줄 때에는 ‘기간 프리미엄’이라는 덤의 이자가 붙게 됩니다.
채권시장에서 너무 길게 돈을 빌려주는 걸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성입니다. 그 긴 시간 사이에 물가가 대폭 뛰어서 나의 채권가치가 희석될 지도 모르고, 인플레이션 때문에 중앙은행이 금리를 대폭 올릴 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낮은 이자만 받고 10년을 묵혀 둬도 괜찮겠느냐는 걱정이죠.
그런데 지난 2000년대 중간 미국 연준은 ‘지극히 예측 가능한’ 금리인상은 그런 걱정을 덜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장기금리에 붙는 기간 프리미엄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고, 만 2년 동안 금리를 무려 4.25%포인트나 논스톱으로 인상했는데도 불구하고 장기금리는 거의 오르지 않았던 겁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우리나라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초단기 정책금리차이가 아닌, 미국의 장기금리 수준, 특히 장기금리에 붙는 텀 프리미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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