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박인옥 한국문인협회 안양지부장이 기형도 시인이 술값을 대신 내준 여성에게 선물했던 미공개 연시(戀詩) 3편을 공개했다. 앞서 성우제 작가가 공개한 시 1편을 포함해 두편이 더 알려지게 된 것이다.
기 시인의 미공개 연시는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박 지부장은 "지난 2014년 상가집에서 그 여성 분을 30년 만에 다시 만났다"며 "그 분도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나서 집에 돌아가서 서재를 뒤적이다가 1989년 유고 시집에 풀로 붙여놓은 시 3편을 발견했다더라"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당시 경기도 광명에 기형도문학관 건립에 대한 얘기가 오가던 중이라 일단 공개하지 말고 갖고 있다가 문학관이 개관하면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형도문학관은 올해 10~11월 설립될 예정이다.
1982년 방위병이었던 22살의 기형도 시인은 근무지인 안양에서 수리문학회 회원들과 어울리곤 했다. 1980년 강미경, 기형도, 박인옥, 유재복, 홍순창 등을 주축으로 결성된 시동인회인 수리문학회는 당시 안양지하상가 내 도서대여점 '독서당 수리'와 '안양다방' 등에서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시를 합평하고 전시회를 개최했다.
기 시인으로부터 연시를 받은 여성은 수리문학회 동인 중 한 명의 여동생으로 현재는 50대 중반의 평범한 주부다. 박 지부장은 "특별한 러브스토리가 있었다기 보단 '내가 오늘 술값 낼 테니까 멋있는 글 하나 써줘', '술값 낼 테니까 10년, 20년 뒤에 이날 술값의 10배, 20배를 받겠다' 이러면서 장난치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소설가 성석제의 동생인 성우제 작가도 지난 13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미공개 연시를 한 편 공개했다. 성 작가는 "여자 회원들이 술값을 내주면 형도 형은 보답으로 연시인지 연서인지를 써줬다"며 "나중에 가지고 오면 돈을 갚겠다고 했다던가, 돈이 될 거라 했다던가, 여튼 그랬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기형도의 연시 3편이다.
'당신의 두 눈에 /나지막한 등불이 켜지는 /밤이면 /그대여, 그것을 /그리움이라 부르십시오 /당신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람입니까, 눈(雪)입니까 /아, 어쩌면 당신은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지요 /손을 내미십시오 /저는 언제나 당신 배경에 /손을 뻗치면 닿을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읍니다.'
'당신에게 /오늘 이 쓸쓸한 밤 /나지막하게 노크할 사람이 /있읍니까 /하늘 언저리마다 /낮게 낮게 눈이 꽂히고 /당신의 찻잔은 /이미 어둠으로 차갑게 식어 있읍니다 /그대여, 옷은 입으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통나무 문을 여십시오 /나는 그대에게 최초로 /아름다운 한 점 눈(雪)으로 /서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외투 깃을 올릴 때 /무엇이 당신을 /차갑게 하는지 두렵게 하는지 /알고계세요? /풀잎은 모두 대지를 향해 /지친 허리를 누이는 밤 /아, 하루에도 언제나 /긴 강은 소리없이 흐르고 /그 강물에 당신의 영혼이 /미역을 감는 밤 /아세요. /나는 언제나 당신의 주위에서 /튀어올라 물보라치는 /물비늘임을 그대는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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