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찰의 '시대정신'은 어떤 시대일까

머니투데이 진달래 기자 | 2017.06.21 06:01

숨가쁜 경찰의 '시대' 읽기…故백남기 농민 사망에 모르쇠→찾아가 사과, 극적 변화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경찰청장 입에서 이 한마디가 나오는 데 1년 7개월이 걸렸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2015년 11월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해 경찰의 과잉 대응을 인정하며 처음 사과했다. 사흘 뒤인 19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사과는 사과를 받는 사람이 느껴야 하는 것”이라며 유족들이 있는 전남 보성에까지 찾아가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도 했다.

불과 이삼개월 사이의 변화다. 경찰이 백씨 시신에 부검영장을 신청해 논란을 일으킨 지난해 9월 말 이 청장은 “일반 변사처리지침”을 언급했다. 사인도 ‘급성신부전’이라고 했다. 죽음에 대한 입장을 물으면 ‘불법 폭력시위가 있었고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에 이 청장은 “여러 상황과 시대인식 변화가 전체적으로 겹쳤다”고 말했다.

경찰의 ‘시대’ 읽기는 숨 가쁘다. 문재인 정부 출범을 전후해 검·경 수사권 조정을 놓고도 이 청장은 수시로 “시대정신에 맞춰 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정신을 담아 국민편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2017년 한국사회를 어떤 시대로 읽는 걸까. 고작 1년도 안되는 사이에 실제로 시대가 바뀌었을 리 없다. 변한 것은 청와대 주인이다. 새로운 청와대는 검·경 수사권 조정 선결 과제로 인권 친화적 경찰을 요구했다. 서울대병원은 백씨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했다.


결국 경찰이 읽는 시대는 정권인 셈이다. 조직 혹은 개인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면 당연한 판단이기도 하다. 국민이 선택한 정권에 충성하는 게 마땅한 의무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뒤바뀐 순서 탓이다.

정권이 시대 정신의 산물이지만 그 자체가 시대 정신은 아니다. 시대는 국민이 만든다. 정권 또한 국민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면 언제고 무대를 내려가야 한다. 경찰이 정권이 아닌 국민의 시대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뢰받는 ‘인권’ 경찰로 거듭나는 첫 걸음은 정권을 읽은 사과가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고 하는 진짜 ‘시대정신’에 맞는 경찰 조직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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