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완벽주의’가 곡을 쓰고 녹음을 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믹싱과 마스터링을 거쳐 음반을 제작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반영된 사연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섬세하다거나 지독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의 영역이 아닌 듯 보인다. 차라리 창작자의 감정과 의도를 온전히 목소리와 연주에 담아내고, 또한 그것이 만들어낸 최초의 음향을 감상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물리학에 가깝다. 이석원이 음악가보다 작가가 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이라면, 활자를 이루는 잉크가 미세하게 번지거나 글이 완벽한 수평을 이루며 인쇄되지 않았더라도, 그의 생각을 100% 전달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동시에, 언니네 이발관은 이 모든 치열함이 자연스럽게 전달되길 원한다. 수없이 갈고 닦은 문장일수록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앨범 소개에서도 직접 언급하고 있다. “곡을 만들 때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연스러움인데, 우리의 경우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수많은 인공적인 손질 끝에 나온다. 그래서 실은 많은 음의 조각들을 이어 붙인 이 곡이, 마치 한 순간에 만든 듯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기뻤다.” (‘누구나 아는 비밀’ 소개 중) 예술 분야를 평할 때 많이 쓰는 단어 중 ‘effortless’가 있다. 어떤 일을 손쉽게 한다는 뜻이지만, ‘손쉽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이 단어를 보면, 고난도의 퍼포먼스를 아무렇지 않게 해내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지루한 노력을 상상할 수 있다. 또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아름답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담긴 정교하고 치열한 노고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 단어는 그냥 아무렇게나 막 하는데, 그게 참 좋은, 창작의 황홀을 담는다.
‘홀로 있는 사람들’을 들으며 좋을 때도 그 단어를 생각했고, 다시 별로일 때도 그 단어를 생각했다. 공예에 가까운 세밀한 작업의 결과에 감탄하는 순간이 있다.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글이 가사가 되어 음악과 떼어낼 수 없는 한 몸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음악은 기타팝 밴드로서의 정체과 취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획득한 것이라 더 짜릿하다.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가 너무 좋은 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젊은 그들이, 혹은 모든 창작자가 때때로 그냥 내뱉듯이 던져놓는 번뜩임이 그립다. 노고와 그것에 담긴 피로가 느껴질 때마다 김이 빠진다.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를 듣다가 앨범의 시작으로 돌아가거나, ‘누구나 아는 비밀’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매 트랙마다 이 일을 반복한다. 우리는 보통 훌륭한 앨범을 좋아한다. 가끔 훌륭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앨범이 있고, 아주 드물게 훌륭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앨범이 있다. ‘홀로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속한다. 나는 이 앨범을 좋아할 수 없다. 마지막 앨범이라서가 아니다. 결국 슬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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