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나도 모르게 새는 '내 주머니'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 2017.06.07 04:43
한국자영업자총연대가 지난달 23일 카드사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여신금융협회 앞에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촉구하는 규탄대회를 열었다. 가맹점이 내는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다. 규탄대회는 이 공약을 빨리 시행하라는 이벤트로 해석됐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가맹점 수수료를 깎으면 누군가는 깎은 금액만큼 손해를 봐야 한다. 정치인들은 손해를 보는 것이 카드사라고 생각한다. 기업에 부담을 지워도 기업 사장과 주요주주 몇 사람의 표만 잃는다. 반면 수수료를 인하해 이익을 보는 국내 자영업자는 560여만명으로 추정된다. 기껏해야 수백표를 잃고 수백만표를 얻는다면 정치인에겐 남는 장사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는 단골 공약이다.

문제는 기업이 손해를 보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은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월급도 줘야 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 이유가 없다. 카드사도 수수료가 깎여 이익이 줄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수수료와 이자가 주수입원인 카드사로선 수수료 이익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대출을 늘려 이자 수입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나마 이자 수입은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옥죄면서 늘리기 어려워졌다. 더욱 비용 절감에 목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카드사가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비용이 카드 회원들에게 부여하는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 혜택에 들어가는 돈이다. 지난해 가맹점 수수료가 인하되면서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많은 알짜 카드들은 이미 줄줄이 사라졌고 남아 있는 카드들의 기존 혜택도 대폭 축소됐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라 가맹점주가 얻는 이익은 소비자들이 얻는 혜택 축소로 상당부분 충당된다.

그런데도 카드 혜택을 지키기 위한 ‘신용카드 회원의 권익보호연대’ 같은 단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가맹점주가 얻는 이익은 명확하게 금액으로 계산되는 반면 카드 회원들의 혜택 축소는 각자 너무 달라 일괄적으로 계산하기 힘들고 1인당 줄어드는 혜택을 금액으로 환산해봤자 조직을 결성해 목소리를 높일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가맹점 수수료만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사안에서 특수한 이익집단의 이익이 불특정다수인 소비자들의 이익에 앞선다. 이해관계로 조직화한 100명이 불특정 1만명보다 정치인에게 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공공선택학파라는 경제이론으로도 정리됐다.


새 정부 들어 카드사뿐만 아니라 은행과 보험사까지 전 금융업계가 전전긍긍이다. 금융 수수료를 인상할 때 적정한지 꼼꼼히 따져보는 적정성 심사제도를 도입하고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가맹점 수수료와 금융 수수료, 보험료는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인데 가격에 개입해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경제이론상 정부가 규제하는 이유는 산업이 독과점이라 소비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 때다. 하지만 국내 카드와 은행, 보험산업은 모두 독과점이 아닌 것은 물론 일각에선 시장 규모에 비해 플레이어가 너무 많은 경쟁 과당시장이라고 본다. 이런 경쟁시장에는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담합은 없는지 감독이 필요하지 경쟁의 한 요소인 가격에 대한 직접 개입은 부작용만 낳는다는게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도 직접적인 가격 개입 같은 규제가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검토되거나 추진되는 일이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공공선택학파에 따르면 이런 규제는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득만 되는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기업은 억제된 가격 등 규제에 따른 비용을 어떻게든 보전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 오늘 정말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어. 글쎄 정치가가 양손을 자기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는 거야.”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항상 남의 주머니에서 남의 것으로 선심 쓰고 생색내는 정치가의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누군가를 위한 정책이라고 두 손 들고 환호하는 사이, 당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새고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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