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 재단의 이름만 들어도 설렐지 모른다. 1984년 설립돼 전 세계 50여개국, 350명 이상의 아티스트를 아우르며 150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다.
까르띠에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국내 관람객을 찾는다.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하이라이트'전이다.
'하이라이트'전에선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데이빗 린치의 드로잉 작품부터 키타노 다케시의 도자 조각, 영화감독 박찬욱·작가 박찬경 듀오 '파킹찬스'의 3D영상, 이불 작가의 작품까지 국적도, 장르도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사라 지, 론 뮤익, 뫼비우스 등 재단을 대표하는 작품도 이번 서울 전시에 포함됐다.
제공, Marlene Antoine-Lipka
에르베 샹데스 까르띠에 재단 관장은 30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모험을 하는 기분으로 창의적인 도시 서울에 왔다"며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재단이지만 '코스모폴리탄'을 지향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한국 예술계를 만나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까르띠에 재단 컬렉션의 특징은 단순히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구입,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의 교류를 통해 작품을 직접 주문 제작,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함께 전시를 기획한 그라치아 콰로니 큐레이터는 "(재단은) 작가들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고 세계적으로 알리면서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아직 존재하지 않은 작품을 주문 제작하는데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샹데스 관장 역시 "예술가에게 작품은 추억의 도구로 남아있는 것"이라며 "제작주문한 걸 구입함으로써 기억을 수집하고 예술가와의 대화를 이어가는 걸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까르띠에 재단의 또 다른 특징은 미술가와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 음악가, 조각가들의 만남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는 점이다.
콰로니 큐레이터는 "사회, 과학, 학술, 환경 등 어떤 것이라도 중요한 주제가 된다. 물론 미학적인 측면을 간과하지는 않는다"며 "현대미술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술가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묻고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디어가 (실제) 형태를 갖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샹데스 관장은 "재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정해진 기준은 없다. 미술의 영역은 우리 지구만큼이나 넓다"고 강조하며 수학자와 협업했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가 재단의 신념으로 꼽은 것은 '호기심'이다. 폭넓은 스펙트럼의 예술가나 지식인들과 소통하면서 호기심의 경계를 확장했기 때문에 다른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주제를 선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재단은) 영화,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와 일을 하고 다양한 언어로 활동한다. 신진작가를 발굴하거나 중견 작가들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펼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미술의 영역을 넓히고 싶다"며 "대중도 감동과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선 한국 작가들과도 다양한 협업을 펼쳤다. '파킹 찬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형제 감독 박찬욱·박찬경을 비롯해 2007년 재단과 인연을 맺은 이불 작가, 웹툰으로 활동하는 선우훈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기획한 작품을 선보인다.
프랑스 아티스트 장-미셸 알베롤라와 마크 쿠튀리에는 서울시립미술관 공간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설치 작품을 전시한다. 알베롤라는 색채를 이용해 여러 공간의 바닥을 연결했다. 쿠튀리에는 벽면 드로잉 작품을 선보인다.
아직 낯선 개념인 '생물음향학'(biophony)을 연구하는 버니 크라우즈와 영국 런던의 스튜디오 UVA(United Visual Artists)의 협업 작품은 환경 문제를 다룬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와 뉴욕의 건축가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가 함께 제작한 작품 '출구'는 인구 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았다.
프랑스 사진작가 겸 영화감독인 레이몽 드파르동과 클로딘 누가레, 브라질의 클라우디아 안두자르는 작품을 통해 대자연과의 관계를 묻는다. 이밖에 콩고 출신 작가 쉐리 삼바의 드로잉부터 중국의 차이 구오 치앙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최초로 3개 층 전관에 작품을 전시, 관람객이 ‘발견’, ‘명상’, ‘문학’, ‘소리’, ‘놀라움’이라는 주제에 따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재단은 이번 서울 전시를 시작으로 아시아 순회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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