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바둑계 떠나는 알파고가 남긴 것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 2017.05.31 03:00
어쩌면 처음부터 ‘뻔한’ 승부였다. 지난주 중국 저장성에서 개최된 구글 알파고 대 프로 바둑기사들의 대국 얘기다.

구글 알파고가 세계랭킹 1위 커제 9단과의 3차례 대국에서 압승을 거뒀다. 스웨·천야오예·미위팅·탕웨이싱·저우루이양 9단의 집단지성 역시 알파고에는 역부족이었다.

알파고는 1년 만에 더 강해져서 우리에게 돌아왔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앞두고 16만개 넘는 기보를 학습한 알파고는 이제 스스로 수를 찾아내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는 알파고의 실력이 1년 전보다 3점 정도 늘었다고 평가했다. 3점은 프로기사와 아마추어 6단의 차이다.

그런데도 1년 전 이세돌 9단과의 대국 당시 느낀 충격이나 감회는 별로 없다. 왜일까. 사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대국 당시 우리 사회가 심각한 쇼크에 직면한 건 기계(인공지능)가 인간의 고유 영역마저 침범했다는 막연한 공포 탓이 크다. 10의 170승에 달하는 경우의 수 게임인 바둑에서 인간의 직관력과 감각을 기계가 함부로 따라잡진 못할 것이라는 통념이 무참히 깨진 데 따른 일시적 충격이었다. 바둑뿐 아니라 모든 인류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다. 알파고는 바둑을 잘 두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방대한 데이터와 컴퓨팅 능력으로 수를 둘 때마다 앞으로의 진행에서 승률이 높은 쪽을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할 뿐 결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바둑계 역시 마찬가지다. 수천 년 이어온 인류 바둑이 기계에 정복당했다고 좌절감을 느끼는 기사는 별로 없다. 오히려 신선한 활력소로 받아들인다. 대국 과정에서 알파고가 보여준 파격적인 수들은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최고의 연구 대상이다. 모두가 어이없는 실수나 오류로 생각한 알파고의 수가 결과적으론 오묘한 한 수였음이 증명될 때마다 바둑팬들은 열광했다. 실제 알파고 기보는 프로 기사간 실전에서도 종종 차용된다.


알파고 등장 이후 오히려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우려됐던 바둑의 세계가 더욱 확장됐다는 평가다. 대국에 참여했던 렌샤오 8단은 “알파고가 불어넣은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바둑의 시야가 넓어지는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PC 게임 혹은 스마트폰에 빼앗겼던 바둑팬도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중국 대국을 끝으로 알파고는 바둑계에서 은퇴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각 영역에선 이미 제2의 알파고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BM ‘왓슨’은 이미 암 진료 분야에선 세계 주요 병원에서 상당한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300종 이상의 학술지와 1200만장에 달하는 문서를 학습한 왓슨은 환자의 나이, 성별, 몸상태, 질병 진척 속도에 따라 빠르게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인간 의사를 대신하진 않는다. 도울 뿐이다. 희귀 난치병 치료 등을 위한 신약 개발 분야에도 인공지능 기술이 활용된다. 세계적 제약회사 화이자는 왓슨을 이용해 면역항암제 개발을 진행 중이다. 구글 딥마인드 역시 알파고의 다음 목표로 신약 개발을 꼽았다. 하사비스 CEO는 “알파고에 쓰인 알고리즘은 새로운 질병 치료와 에너지 절감, 새로운 소재 개발 등 과학자들이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란 비관적인 시각은 여전히 많다. 그렇다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의 거대한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젠 인류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인공지능을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런 차원에서 알파고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어떻게 공존할 지를 보여준 선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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