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쉽던'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 까다로워진다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 2017.05.25 04:35

[정신보건법 개정]①전문의 1명에서 2명 진단, 강제입원 요건 강화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2013년 11월4일. 집에서 잠을 자던 박모(61·여)씨는 함부로 집에 들어온 몇 사람에 의해 손발이 묶인 채 정신병원에 실려갔다. 입원을 거부했지만 박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씨에게 씌워진 굴레는 갱년기 우울증.

박씨는 훗날 두 자녀가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벌인 짓이라는 걸 알고 법원에 구제신청과 함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헌법재판소는 3년만인 지난해 9월29일 보호자 두 명이 동의하고 의사가 인정하면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정신보건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손쉽게 이뤄지던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이 다중 절차 도입으로 한층 까다로워진다. 보건복지부가 오는 30일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전문의 2명 거쳐야 강제입원 가능 = 이 법의 핵심은 강제입원 과정이다. 복수의 전문의가 필요성을 인정해야만 강제입원이 가능해진다.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 또는 정상인이라도 자해나 타해 위험이 있을 때 보호자 2명의 요청과 전문의 1명 동의만 있으면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다.

어렵지 않게 가족 중 누군가를 정신병동에 가둬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박씨 같은 피해자가 끊이지 않았다. 이 법은 가족간 갈등이나 재산 다툼에 악용돼왔다.

중소기업 사장 김모(55)씨도 유사한 경우다. 그는 아내에 의해 정신병원에 이송됐는데 의사는 의처증이 있는 김씨가 공격적이고 폭력 성향이 있다며 마땅히 입원시켜야 한다고 진단했다. 입원동의서에는 보호의무자인 부인과 딸의 서명이 있었지만 딸은 정신지체 3급으로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였다. 수년 뒤 병원에서 풀려난 그는 아내가 회사 경영권을 빼앗으려 했다고 주장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정신병원 입원환자의 67%가 강제입원 환자다. 독일(17%)이나 영국(14%), 이탈리아(12%) 등은 상대적으로 비율이 매우 낮다. 이는 우리나라 강제입원이 얼마나 손쉽게 이뤄졌는지를 보여준다.


◇화장품회사 입사도 가로막던 '정신질환자' 규정 개정 = 새 법은 정신질환자이면서 자·타해 위험이 모두 인정돼야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보호자 2명과 전문의 1명 진단으로 입원했다고 해도 입원 기간이 2주에 한정된다. 그 이상 입원을 유지하려면 타 병원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 모든 강제입원은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로부터 입원일로부터 1개월 내 입원적합 여부 판단을 받아야 한다. 강제입원시 6개월에 한 번 이뤄지던 연장 심사는 3개월씩 두 번, 이후 6개월에 한 번으로 촘촘해졌다.

강제입원 필요 근거인 정신질환자의 정의도 바뀐다. 지금의 정신보건법은 정신병, 인격장애, 알코올 및 약물중독자, 기타 비정신병적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제는 독립적 일상생활에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된다. 우울증이나 경증 환자를 병원에 가둘 근거가 희박해진 것이다.

정신질환자 규정을 바꾸면서 사회 진출의 문턱도 낮아지게 됐다. '정신질환자' 범주에 들면 불특정 다수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직업이 제한된다. 여기에는 화장품 제조나 말(馬)조련사 같은 직종도 포함됐다.

차전경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지금까지 우울증 환자마저 정신질환자 범주에 포함돼 미용사나 화장품 제조판매 등 취업활동이 제한됐다"며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 인권보호와 복지에 초점을 두고 마련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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