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문재인의 '빈손'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 2017.05.15 03:24
정권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대통령이 식판을 들고 일반 직원들과 같이 점심 먹는 것을 보면서 정권교체를 실감한다. 대변인이 밀봉된 봉투를 들고 나와 읽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 앞에서 국무총리 지명자와 비서실장을 발표하고 지정석도 없이 여야 의원들이 섞여 앉아 대통령 취임식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변화를 절감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전임 정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계속 일어나는데 인상적인 장면은 몇 개 더 있다.

첫 번째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경쟁자로서 문재인 후보와 한때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 안희정 충남지사가 광화문광장에서 대통령의 볼에 입을 맞추는 장면이다. 모르긴 몰라도 어디서 술을 한 잔한 듯한 안 지사가 기습적으로 대통령 당선인의 볼에 키스하고 이에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면서 안 지사를 끌어안는다. 이것 하나로 문재인정부는 권위를 내려놓고 격의 없이 소통하는 정부임을 해외에까지 널리 알렸다.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 보도가 나온 뒤 이낙연 국무총리 지명자 측이 제시한 병무청 탄원서도 일반 상식과 다르다. 이 총리 지명자 아들은 고등학교 시절 사고로 어깨가 빠지고 수술까지 받아 병역면제 판정을 받는데 이 지명자의 대응이 예사롭지 않다.

이 지명자는 병무청에 탄원서를 보내 자신의 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도록 선처해줄 것을 부탁하고 그게 어렵다면 공익요원으로라도 복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한다. 이 탄원서 한 장으로 이낙연 총리 지명자의 국회 청문회는 끝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51세의 젊은 비서실장, 검찰 개혁을 위한 비검사 출신 민정수석 등 과거와 다른 청와대 비서실 인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전임 정부와 가장 확실히 차별화한 것은 청와대 안살림을 책임지는 총무비서관 인사다. 이명박·박근혜정부는 물론 노무현정부 때도 총무비서관은 대통령의 최측근이 맡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방대 7급 공채 출신 예산전문 공무원에게 그 자리가 돌아갔다. 권력형 비리의 악습을 끊고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청와대를 운영하겠다는 대통령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이 인사 하나로 문재인정부에선 ‘문고리 권력’이란 말이 사라지고 말았다.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장량이 황제에겐 스승이 있을 수 없다며 훌쩍 떠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최측근들도 그래야 한다. 그게 대통령도 살고 자신들도 사는 길이다.

공을 이루고 일이 잘 풀릴 때는 마땅히 그 마지막 길을 미리 살펴봐야 한다. 김대중·노무현정권은 물론 이명박·박근혜정부도 시작은 화려했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마지막은 실패로 끝났다.

감동과 박수는 오래가지 못한다. 세상만사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일이 있다. 올라가기는 쉬워도 내려오기는 어렵다. 항룡유회(亢龍有悔)다. 하늘 끝까지 오른 용은 후회하고 하는 일마다 골칫거리가 생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까치발로는 오래 서지 못한다. 가랑이를 한껏 벌려 걷는 걸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강직은 과격하기 쉽다. 곧음을 지키되 관대한 게 좋다.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제 힘으로 안 되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정의 마음은 더 중요하다. 평상심이 도(道)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해라.

주역 64괘의 마지막은 화수미제(火水未濟)다. 역사도 인생도 정치도 다 미완성이다. 미완성이 보편적이며 결국 남는 것은 과정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취임사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이다. 거기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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