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영월 청령포에 새겨진 소년왕의 눈물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2017.05.13 10:52

<64> ‘비운의 왕’ 단종을 만나러 가는 길

편집자주 |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강 건너로 보이는 청령포 전경/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국내 여행지 중 가장 많이 가본 곳을 꼽으라면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를 빼놓을 수 없다. 일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서, 여럿이 떠나는 여행길에 섞여서… 봄이 되면 무슨 핑계를 대어서라도 청령포에 다녀오고는 한다. 역사의 기억이 화인(火印)처럼 찍힌 곳에서 옛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은 남다르다. 그곳이 슬픔의 현장이라면 나를 씻어내기에 더욱 좋다. 눈물은 정화를 위한 최고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청령포를 다녀왔다.

매번 절감하는 것이지만 단종을 만나러 가는 길은 슬픔과 동행하는 길이다. 계절은 쉼 없이 오가고 시간은 앞으로 줄달음치지만 바위마다 돌마다 새겨진 소년 왕의 눈물은 지워지지 않는다. 청령포에 갈 때는 가슴에 묻어둔 슬픔의 보따리 먼저 풀어 놓을 일이다. 강을 건너는 배는 슬픔을 아는 사람만 탈 자격이 있다. 진정 슬퍼본 사람에게만, 스스로가 가진 행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주어진다.

슬픔이 하늘에 닿은들, 봄을 어찌 눈물 빛으로만 칠할 수 있으랴. 눈을 들어보면 세상은 여전히 환한 빛이 감싸고 있다. 꽃은 다투어 피고 지고 농부들은 보습과 호미로 잠들었던 땅을 깨운다. 이쪽 나루에서 바라본 청령포에도 초록이 가득하다. 저쪽으로 가기 위해 줄을 서서 배를 탄다. 단종이 울면서 탔을 나룻배가 아니라 단숨에 강을 건너는 동력선이다.

강변의 둥근 자갈에는 시간이 지문처럼 새겨져 있다. 559년 전 쫓겨난 왕이 걷던 강변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으리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를 만난다. 손을 잡고 소나무 숲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모래밭까지 슬픔으로 질척거린다.

청령포의 단종 어소/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이 청령포에 도착한 것은 1457년 6월. 한양에서 50명의 군졸과 이곳까지 오는데 이레밖에 안 걸렸다고 한다. 쫓겨난 왕은 노여움과 슬픔, 그리고 고단을 온몸에 새겼을 것이다. 그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다. 청령포는 하늘이 지어놓은 감옥이다. 3면에는 시퍼런 강이 흐르고 단 한 곳 육지와 연결된 쪽에는 육육봉(六六峰)이라는 암벽이 솟아있다. 게다가 이 섬 아닌 섬은 사람보다는 짐승의 영역이었다. 구중심처에서 살던 소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었을 것이다.


먼저 왕이 머물렀다는 어소(御所)를 둘러본다. 승정원일기에 따라 복원했다고 하지만 조금 미심쩍다. 이렇게 번듯한 집이었을 리 없다. 구들도 없는 방에서 지냈다는 야사에 더 믿음이 간다. 밀랍인형들만 자리를 지킬 뿐, 왕이나 옛 주인을 모시겠다고 따라왔다는 궁녀들의 자취는 없다. 어찌 인형으로 그 절절한 슬픔을 표현할 수 있으랴. 주인의 죽음을 보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던 궁녀들의 피눈물은 또 어찌 표현할까.

역시 가장 오래 마음이 머무는 곳은 관음송(觀音松)이다. 청령포는 700그루의 금강송이 서 있는 보기 드문 솔숲이지만, 실제로 단종을 만난 소나무는 관음송 하나뿐이다. 단종이 기거할 때 이미 50∼100살이었다고 하고 그 뒤로 550년도 더 지났으니 어림잡아도 600살이 넘었다. 왕의 눈물을 보았으니 관(觀)이요, 황혼녘 폐부를 찢는 오열을 들었으니 음(音)이다.

봄풀들이 아우성치며 키를 재고 있는 길을 걸어 망향탑으로 간다. 망향탑은 절벽의 손바닥만한 빈 터에 쌓은 초라한 돌무더기다. 단종이 한양에 있는 왕비 송 씨를 그리워하며 막돌을 주워 쌓았다고 한다. 돌이 아니라 눈물을 쌓은 것이겠지. 쌓아도 쌓아도 가시지 않았을 분노와 그리움, 그리고 절망을 가늠해 본다. 걸음의 종착지는 노산군이 된 왕이 한양 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다. 거기 특별한 것이 있을 턱이 없다. 80m의 까마득한 절벽과 퍼렇게 서슬을 세운 강물에 심사만 어지러울 뿐이다. 조카를 가두기 위해 이 험지를 찾아낸 숙부의 마음이 칼이 되어 폐부를 저민다.

다시 내려와 강 건너편 솔숲을 바라본다. 거기 단종에게 내릴 사약을 가져왔던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비가 있다. 단종의 죽음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읊었다는, ‘머나먼 길에 고은님 여희압고’로 시작하는 시조는 가혹했을 시간의 편린을 전해준다. 단종은 청령포에서 두 달 정도 지냈다. 6월에 도착해서 8월에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영월 동헌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겼다가 그해 10월 꽃 같은 생애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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