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한국 전자산업, 호황에 취할 때 아니다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 2017.05.04 05:00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솔직히 업황이 너무 좋아서 고민될 정도네요. 시간이 안 흘렀으면 좋겠어요"

전자업계가 대호황을 맞았다. 밀려드는 시장 수요에 힘입어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전자기업들은 최근 역대급 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1분기 삼성전자는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 부문에서만 사상 최대 규모인 6조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저력을 발휘했다. 전체 영업이익을 시간으로 환산해보면 1분에 1억1000만원씩 벌었다는 계산이다. 이밖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LG전자 등 국내 대표 전자기업들도 일제히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초까지만해도 전자업계의 표정은 어두웠다. 2015년 말 D램 가격은 1년 전보다 50%가량 급락했고, 디스플레이 패널도 중국 업체들이 새로운 라인 가동에 들어가면서 주요 제품 가격이 두 자릿수 이상 떨어졌다. 스마트폰 등 주력 세트 제품 역시 중국의 저가 제품 공세에 어려움을 겪었다.

어둡던 업황을 반전시킨 것은 시장의 '새로운 수요'였다.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며 업계 선두 자리를 지킨 한국 전자업체들은 IT수요가 다시 살아나면서 '인내의 결실'을 수확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달콤함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전자업계 판도는 순식간에 바뀐다는 걸 역사는 보여준다. 특히 한때 정점에 있던 세계적 기업들의 몰락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미국 RCA는 브라운관TV를 세계 최초로 상업화하며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나 일본 샤프, 소니, 마쓰시타 등에 밀리면서 시장에서 사라졌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세계 TV시장을 장악했던 일본 기업들은 디지털시대 전환기를 맞아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에 기술력 및 생산성에 뒤지면서 시장 주도권을 내주고 추락했다.


삼성이 1969년 전자사업에 진출할 때 기술을 제공한 합작 파트너는 일본 산요전기였다. 그러나 이 거대 전자기업은 기술의 중심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는 시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가 결국 파산했다. 일본 전자업계의 상징이던 샤프도 경영진의 판단 착오와 변화 실패로 대만 홍하이그룹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

변화의 속도가 최근 더욱 빨라졌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아무리 선두기업이라고 해도 선제적 투자 및 기술개발이 뒤처질 경우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곧 도태될 수밖에 없다. 2008년까지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차지했던 세계 1위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몰락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을 글로벌 업체들에게 주도적으로 공급하고 있지만,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업체들의 추격은 언젠가 현실화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자부하는 '기술 격차'도 안심할 부분이 아니다. 최고 자리에 오른 자신을 스스로 극복하는 '파괴적 혁신'이 절실하다.

최근 일본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서 보듯 전자산업은 이제 '국가차원'의 자원이 됐다. 다음주 출범할 새 정부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차원에서 우리 전자산업을 바라봐야 한다. 귀는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눈은 글로벌 무대를 향하며 입은 국익을 외치는 '유능한' 정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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