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너무 힘든 당신, 생각하고 기다리며 금식합니다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 2017.04.29 07:29

[줄리아 투자노트]

일요일 밤, 잠 들려 누운 내 옆에 고딩 아들이 다가와 살포시 누웠다. “엄마, 나 너무 아파.” “어디가 아파?” 퉁명스럽게 말했다.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도저히 아플 수 없었다. 금요일 학교 수업 마치자마자 일요일 그 시간까지 PC 앞에 앉아 정열적으로 게임을 하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오가며 2박3일을 원하는 대로 보냈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현란하게 PC 자판기를 두드리던 아들이 금세 아파질 리 없었다.

“손가락이 너무 아파. PC를 너무 했나 봐.” 나는 아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야, 너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너 내일부터 고등학교 들어가서 첫 중간고사야’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가슴에 삼켰다. “그러니까 게임 좀 작작해.”

시험기간 내내 가방 열어 책 한번 꺼내보지 않고 잠 자기 직전까지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거나 앉아서 PC를 하며 방에 과자봉지와 생수통, 참치 캔과 먹고 남은 그릇들을 너저분하게 쌓아놓는 아들은 지켜보는 일은 괴롭기 그지없다. 목소리 높여 야단도 쳐보고 집을 나가라고도 해보고 전문가와 온 가족이 상담도 받아보고 수년간 온갖 방법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들을 통해 내가 도를 닦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벤처 투자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팀 페리스는 ‘타이탄의 도구들’이란 책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혁신가들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높이 평가한다고 소개했다. '싯다르타'에서 부유한 상인이 구도자 싯다르타에게 묻는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싯다르타는 “나는 생각하고 기다리며 금식할 수 있다. 그게 내가 가진 것”이라고 답한다. 내게 너무 힘든 아들을 떠올리며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필요한 것이 싯다르타가 가진 생각과 기다림, 그리고 금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생각해야 한다. 힘든 사람이나 힘든 일의 문제점을 생각하며 비판거리를 찾아내라는 말이 아니다. 힘든 사람, 힘든 일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생각의 방향이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 반면교사(反面敎師)를 하라는 것이다. 게임을 끊지 못하는 아들을 보면서 아들의 못난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혹시 끊지 못하는 인생의 독이 있는지, 내 아들도 저런데 혹시 내가 무의식적으로나마 공부를 못한다고, 능력이 없다고, 사소한 중독 하나 못 끊는다고 다른 아이를,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얕보지나 않았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아들을 단단히 훈육해 달라고 하시길래 “제가 말한다고 듣나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어머니, 벌써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셨다. 아들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그치니 “엄마, 이제 공부는 포기했어?”라고 했다. 어려운 사람,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고 포기해 버리면 그 어려운 사람, 어려운 상황에 굴복하는 것이다. 성공한 인생에 포기란 없다. 포기처럼 보이지만 당장 조바심을 내고 단기적으로 뭘 해보려 해봤자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미국의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처음 할리우드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어떤 제작자도 그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렸다. 슈워제네거는 “나는 고정 배역을 맡으려 굳이 경쟁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 나를 발견해줄 때를 기다렸다. 내가 한 것은 그저 버티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버티면 이긴다. 지금 당장 겪는 어려움은 언젠가는 지나간다. 믿음을 갖고 기다리면 누군가 반드시 나를 알아주고 힘든 사람이나 상황이 반드시 긍정적으로 변한다.

금식은 지금의 고난을 견디는 힘이다. 부유한 상인이 “금식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나?”라고 묻자 싯다르타는 “어떤 사람에게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금식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답했다. 금식을 하지 못했다면 먹고 살 일을 구하느라 전전긍긍하고 배고픔에 힘들어 했겠지만 금식할 수 있어 조급하지 않고 절박하지 않고 배고픔을 비웃을 수 있으며 조용히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금식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아들이 내신을 잘 받아야 하는데,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나는 게임만 하는 아들의 모습에 노심초사하며 매 순간 고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한다. 아들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성공해야 한다는 욕망으로 마음이 번뇌로 들끓어야 한다. 그 욕망을 버려야 아들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견디며 언젠가 변할 아들의 모습을 기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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