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따뜻한 밥해서 같이 먹고 싶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 2017.04.29 10:05

<98> 김명기 시인 ‘종점식당’


“잘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시 쓰는 네가 자랑스럽다. 부모가 되어서 큰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지만 아들이 쓰는 시 속에 내 피가 흐른다는 생각을 하면 흐뭇하다. 속된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시를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테지. 그러나 길고 어두운 시간을 혼자 보내며 흐트러지지 않은 건 다 시 덕분이겠지. 그런 너를 보면 대견하고 슬프다. 첫 시집이 너무 어두워 이번 시집은 좀 밝았으면 했는데, 너의 시는 여전히 쓸쓸하고 슬프고 안타깝다. 아직 그런 시절 속에 살고 있나보다….”

2005년 ‘시평’으로 등단한 김명기 시인(1969~ )의 두 번째 시집 ‘종점식당’의 뒤표지에 실려 있는 시인의 엄마 글이다. 보통 가까운 시인의 추천사나 해설 일부분을 수록하는데, 특이하게도 시인의 엄마 글을 수록했다. 이는 아마 시인의 뜻일 게다. “아들이 쓰는 시 속에 내 피가 흐른다는 생각을 하면 흐뭇하다”는 말 속에 시인이 왜 엄마의 글을 수록했는지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표제시 ‘사양(斜陽)’에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시인의 애잔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양(斜陽)이란 해 질 무렵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을 말하지만 점점 늙어가는 엄마를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엄마는 농사를 지어야 할 밭에 꽃을 심고 가꾼다. “오가피 뿌리를 파내고/ 깨밭을 갈아엎고/ 상추며 실파며 무 대신/온갖 꽃을 심은 엄마의 꽃밭”을 본 시인은 “더 이상 늙기 싫은 당신 속내 같”다고 한다. “고양이는 짖지 않아서 좋”은 것처럼 “늙은 엄마는 말이 없어서 좋”다고도 한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자기 방에 들어갈 것이고, 서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요와 고요, 습관 같은 적요(寂寥)일 것이다. 시인인 아들은 말보다는 가슴으로, 시로 표현한다.

시 ‘갑골문(胛骨文)’에서도 시인은 “생의 통점들이 모두 닳아버려/ 한 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멍에처럼 구부러진” 노모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노래한다. 고된 농사에 갑골문처럼 뼈만 남은 엄마를 바라보는 시인의 심정이 시에 녹아 있다. 특히 “엄마야 내 늙은 엄마야”에 이르면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왈칵 쏟게 한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강원도 태백, 도계, 통리 등 탄광촌에서 자란 그는, 그의 시는 아직도 태백 준령을 넘어가지 못한 채 아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 ‘신포리역’, ‘이기적 유전자’, ‘폐광지대’, ‘오래 두고 온 저녁’, ‘통리’, ‘사끼야마’, ‘철로변’ 등 많은 시가 어린 시절 탄광촌의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 몰락한 탄광촌 또한 시인에게는 사양이며, 엄마와 마찬가지로 연민의 대상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명확한
도축장 한 귀퉁이
벙글 대로 벙근 목련 진다!
그 그늘 아래 조팝꽃 한창이다
죽음 대수롭지 않은 여기
목 떨어지고 다리 잘린, 속내까지 다 파헤쳐진
핏빛 축생의 응고되지 않은 주검을
이리저리 끌고 밀며 다니는 내가 안녕하듯
저렇게 지는 꽃그늘 속 또 다른 생은 안녕하다

세상 어느 귀퉁이에는 누군가의 찬란한 치장을 위해
팔 다리 잘린 아이들이 절룩절룩 자라고
그 애비들 평균 수명은 마흔이 채 되지 않는다는데
그토록 비참한 얘기마저 이 봄 같은 홀망한 날
막 봉오리 터뜨린 여남은 송이 철쭉처럼
군데군데 자줏빛 핏방울 번지는 작업복 위로
이 살풍경의 배후 같은 햇살이 기울고
그 사이 꽃잎 몇 장 더 떨어지고
떨어진 꽃잎 몇 장 끌고 다른 꽃을 밀어 올리며
이렇게 안녕하신 봄날은 가고 있다
- ‘봄날은 안녕하다’ 전문

영(嶺)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 머물던 시인은 한때 경기도 부천의 한 도축장에서 일한다. “죽음 대수롭지 않은 여기”일지라도 “목 떨어지고 다리 잘린, 속내까지 다 파헤쳐진/ 핏빛 축생의 응고되지 않은 주검” 앞에 천성이 모질지 못한 시인은 “내가 안녕”하다고 자위하지만 결코 안녕하지 못하다. 도축장에서 죽어가는 목숨과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다르지 않다. 작업복 위로 “군데군데 자줏빛 핏방울 번지는” 살풍경에서 시인은 “세상 어느 귀퉁이”에서 “누군가의 찬란한 치장을 위해/ 팔 다리 잘린 아이들이 절룩절룩 자라고” 채 마흔이 되지 않는 “그 애비들 평균 수명”, 즉 변방에서 살고 있는 소외된 삶들을 떠올린다.

시인이 삶과 죽음의 경계인 도축장이나 원양어선을 타고 먼 바다로 나간 것도 결국 먹고 살기 위한, 즉 밥을 위한 것이다. 응급실 복도에서 싸우고 있는 술집여자와 남자, 옥수역에 도착한 전철에서 미처 내리지 못한 노인, 울산 태화강변 어느 노래방에서 소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50대 아저씨들, 제초제를 피로회복제처럼 마신 홀로 죽어간 노파, 산동네 동사무소 담벼락에 모여 영정을 찍는 노인들, 말기 암 아내 밤새 수발하다 밥 벌러 온 남도 사내 등도 결국은 시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위해 아픈 몸을 참아가며 살아가(던)는 사람들이다.

아픈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시인은 밤새 달려 팽목항을 찾는다. “고개를 돌려도 숨길 재주 없는 슬픔”(‘팽목’)에 시인은 무참하다. 방파제 끝에 걸린 “따뜻한 밥해서 같이 먹고 싶다”는 문장을 대하는 순간 시인은 숙연해진다. 무릎을 꿇는다. 팽목항에서 돌아온 시인은 밥을 벌기 위해 중장비에 몸을 싣는다. 울림이 있는 시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종점식당=김명기 지음. 애지 펴냄. 128쪽/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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