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여성정책 들여다보기

머니투데이 박소연 김유진 , 노규환 인턴,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 2017.04.26 09:13

[the300]종합

장밋빛 '여성평등' 공약 만발…구체적 로드맵은 '실종'


대선 주자들은 앞다퉈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여성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여성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일자리·안전·보육 등 공약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을 뿐 성평등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로드맵은 빠져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현재의 젠더(성) 불평등을 타개하기 위한 깊이있는 고민보다 눈길을 사로잡을 단기적 목표 제시에 치중돼 있다는 지적도 많다.

◇고위직 늘리고 임금격차 줄이면 성평등?…현실화 '의문'= 대선주자들의 여성 공약은 대체로 고위직 공무원 등의 여성 비율을 높이고 임금격차를 좁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여성 국회의원 30% 법제화, 임기 내 내각 남녀 동수 달성, 여성청년고용의무할당제 등을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내각 여성비율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30%로 확대하고 '성평등 임금공시제도'를 도입해 기업의 여성차별을 감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역시 '성별 고용·임금실태 공시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임금 성차별 등을 국가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법제도 정비방안도 제시됐다. 심 후보는 △일·가정 양립 관련법 관리감독 강화 △헌법에 남녀동등권 명문화 △성차별에 대한 규제 및 차별금지 법률 제정 등을 공약했다. 안 후보는 헌법 제11조 개정을 통해 국가의 실질적 평등 촉진 의무화를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정책 내실화를 위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거나 확대·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문 후보는 여가부의 기능을 강화한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는 대통령 직속 '국가성평등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고 현재의 여가부는 아동·청소년 정책까지 포함하는 '성평등인권부'로 개편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심 후보는 여가부를 '성평등부'로 전환, 각 부처의 예산이 성평등 관점에서 공정하게 집행되도록 총괄하겠다고 밝혔다. 여가부 폐지를 언급했다 곤욕을 치른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힘없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 '국가양성평등위원회'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선관위에 공개한 10대 공약에 여성평등 관련 공약을 별도로 제시하지 않았다. 유 후보는 민간기업의 육아휴직 사용을 법제화하는 등 보육정책 강화 이외에 여성평등 관련 공약은 밝히지 않았다. 홍 후보는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및 창업기회 확대'를 언급하는 데 그쳤다.

◇'여성폭력 대책' 만발…심, '혐오방지법' 제시 눈길=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여성안전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여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지원대책도 주요한 비중으로 다뤄졌다. 문 후보는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해 젠더폭력방지 계획을 수립하고 전담기구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몰래카메라 이용 범죄(디지털 범죄) 및 스토킹, 데이트 폭력 등 '3대 신종 젠더폭력'에 대한 처벌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스토킹범죄처벌특례법'을 제정하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디지털 기록 삭제 서비스에 대한 국가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젠더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료비 등 지원을 확대하고, 성매매 피해여성을 비범죄해 성산업과 성착취를 근절하겠다는 공약도 언급됐다.

안 후보 역시 '여성폭력 예방·지원 기본법' 제정을 내세웠다. 또 여성폭력 관련 예산을 30% 이상 확대하고 여성폭력 피해시설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를 사회복지종사자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성폭력 목적의 고의음주시 가중처벌하고 음주감경을 배제하는 등 성폭력 처벌을 강화하고,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지속적괴롭힘범죄(스토킹)처벌법 등 법체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심 후보도 신종 3대 폭력에 대한 대응 강화를 내세우면서 차별화된 여성공약으로 눈길을 끌었다. 심 후보는 유일하게 포괄적 '혐오표현'을 포함한 성차별에 대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다. 또 여성 안심주거 환경을 위해 소형임대주택 임대사업자가 범죄예방환경 설계시설을 신설할 경우 보조금 지원과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여성 홈방범서비스에 대한 국고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심 후보는 특히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고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을 허용해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외모지상주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과도한 미용·성형 산업과 여성인권 침해성 광고는 규제하고 저소득층과 청소년의 생리대를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정영애 서울사이버대 복지학과 교수는 "후보들의 여성공약은 대체적으로 충분하지만 문제는 공약을 실현할 예산과 의지다. 한국은 법제도가 충분해도 실현의지가 부족했기에 현재의 공약이 미심쩍은 게 사실"이라며 "'남녀 동수 내각'은 정말 가능한지 의문이 들며 육아휴직이 민간에서 정말 실현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또 "후보들의 보육과 양육 공약은 자칫 성별분업을 고착화할 수 있다"며 "단순히 후보들이 늘어놓은 공약 개수를 보지 말고 후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속을 들여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선 후보들의 '젠더 감수성', 이대로 괜찮나



'돼지 발정제(흥분제)'가 2017년 대선 중반 주요 키워드가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대선을 2주 앞두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자서전 '나 돌아가고 싶다'에 하숙집 친구들과 함께 강간을 모의했던 과거를 서술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가 ‘고백’ ‘고해성사’ 등의 표현을 쓰며 용서를 구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발언에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젠더 감수성(gender sensitivity, '성인지'라고 번역되기도 함)'이 매우 낮은 정치인이란 얘기다. 홍 후보의 이런 문제는 자서전 내용 외 언행에서도 꾸준히 지적돼 왔다.


홍 후보는 지난 17일 한 방송에 출연해 '집에서 설거지를 하느냐'는 질문에 "설거지를 어떻게…. 남자가 하는 일이 있고, 여자가 하는 일이 있다. 그건 하늘이 정한 것"이라고 답하며 성차별적 사고를 드러냈다. 홍 후보의 발언뿐만 아니라 공약에서도 그의 인식은 확인된다. 성평등 공약은 물론 언급도 없다. 여성가족청년부 신설 계획이 전부다.


그가 도지사로 재직했던 경남에선 재정 효율화를 이유로 2015년 '양성평등기금'을 폐지하기도 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은 지난 24일 논평을 통해 "홍 후보는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 그는 뿌리 깊은 성차별 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며 "홍 후보의 낮은 윤리의식과 형편없는 젠더 감수성은 뿌리 깊은 성차별과 폭력의 정당화, 승자독식과 오만한 정치로 이끌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홍 후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20일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 여성응원단 관련 얘기를 하던 도중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참여했을 때는) 완전히 자연미인이었는데, 요즘은 북한에서도 성형수술을 한다더라"는 농담을 해 여성을 대상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문 후보는 몇 시간 뒤 보도자료를 통해 "오늘 최 지사와의 간담회 중 북한 응원단 관련 발언은 북한에서도 세태가 변하고 있다는 취지였다"며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살피는 계기로 삼겠다"고 곧바로 진화해 나섰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의 선언이 빛바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대머리 희화화'를 통해 남성은 놀림의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는 인식을 보였다. 안 후보는 지난 11일 '2017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대회'에 참석해 "대머리의 매력이 뭔지 아냐"며 "헤어(hair)날 수 없는 매력"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후 웃으며 "예. 다 분위기 좋자고 한 말씀들입니다. 앞으로 좀 더 세심하게 신경쓰겠습니다."라고 말해 건성 해명 논란까지 이어졌다.


안 후보는 또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와 관련, '1+1 채용' 의혹이 일자 "전문직 여성에 대한 모독"이라며 '갑질 논란'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성차별 이슈’로 돌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누리꾼들은 "이 발언이 오히려 여성에 대한 모독"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생활' 운운하며 여성 비하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이번 대선 유일한 여성 후보인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젠더 감수성' 논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유 후보의 경우 '여성가족부 폐지', 심 후보의 경우 '클레어법(여성이 교제 남성의 전과를 경찰에 문의할 수 있는 가정폭력전과제도)' 등 공약으로 각각 논쟁을 불러온 바 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부대표는 "정치권의 '젠더 감수성' 부족 문제가 하루 이틀 된 이슈가 아닌 만큼, 비단 후보들의 문제라고만 보기 어려운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라면서도 "그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 만큼 정치권과 대선 후보들도 더욱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부장은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이 하나의 흐름이 됐고 그 흐름을 모든 후보들이 선거 공약이나 캠페인에 차용했지만 충분히 체화하지는 못해 발생하는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며 "공약은 반가우나 실제 얼마나 이행할 것인가에 대해 우려가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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