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정치를 위한 연금, 연금을 위한 정치

머니투데이 강기택 경제부장 | 2017.04.26 05:13
정권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연금지급액을 깎거나 연금 받는 나이를 높이는 것이다. 정권을 얻고 싶다면 거꾸로 하면 된다. 연금정치(pension politics)의 룰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연금지급액을 줄이려다 총리직을 날리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연금수급연령을 65세로 67세로 늦추려다 정권을 내준 것 등이 그 예다.

한국에서도 2명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물러나야 했다.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려던 유시민 장관,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에 휩싸인 진 영 장관이 그들이다.

연금정치는 총선이나 대선 때 출몰한다. 이번 대선도 예외가 아니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과 기초연금 증액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두 가지는 참여정부 때 하나로 엮인 사안이다. 유 전장관은 “적게 내고 많이 받아 후세대를 착취하는 부도덕한 제도”라며 국민연금을 뜯어고치려고 했다. 당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60%였다. 100만원의 월급을 받던 이가 은퇴 뒤 60만원의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50%로 낮추는 대신 9%인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15.9%로 올리려 했다.

그러나 여야가 부딪친 끝에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기존처럼 9%로 두되 소득대체율을 2008년 50%로 낮추고 2009년부턴 매년 0.5%포인트 떨어뜨려 2028년엔 40%로 하는 선에서 절충했다.

국민연금을 덜 주기로 하면서 기초노령연금을 신설했는데 시행 첫해 국민연금 가입자 3년간 평균소득의 5%(8만9000원)인 기초노령연금액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0%가 되는 시점인 2028년엔 10%가 되도록 했다. 소득대체율을 50%로 맞추겠다는 의도였다.

박근혜정부는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이름을 살짝 바꿔 20만원으로 높이되 재정부담을 던다는 차원에서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자의 ‘소득’이 아니라 ‘물가상승률’과 연동했다.


잠복했던 두 연금이슈를 쟁점화한 건 2007년 국민연금 개정안이 통과될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다. 그는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기로 여야가 합의했다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을 공약에 담았다. 심상정 진보당 후보도 같은 공약을 내세웠다.

문 후보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를 폐지하고 기초연금을 더 준다는 방안을 내놓았는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 후보가 같은 방식이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국민연금과 연계를 유지하면서 더 주자는 쪽이다.

문제는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위해선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연금받는 나이를 늦추거나 또는 세금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초연금 역시 세금을 더 걷거나 정부가 빚을 내야 한다. 그런데 재원에 대한 구체적 방도는 다들 말하지 않고 있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연금에 대한 ‘철학’은 없고 ‘정치적 계산’만 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의 문제의식을 문 후보가 계승했다면 국민연금을 늘릴 경우 기초연금은 줄여야 하는데 둘 다 더 주겠다고 한다. 국민연금 정책은 아예 정반대로 간다. 기초노령연금이 만들어지기 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던 옛 한나라당의 논리는 진보당 심 후보가 주장한다. 문 후보, 홍 후보, 유 후보 등은 ‘65세 이상 하위 70%’ 진영인데 참여정부가 ‘하위 45%’였던 원안을 물리고 ‘최초 하위 60%, 2009년부터 하위 70%’로 한나라당과 타협한 것을 그나마 이어받은 셈이다.

연금에 대한 각 정당의 정책이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은 표를 사기 위한 ‘정치의 타락’을 의미한다. 어느 후보든 정권을 차지하면 ‘정치를 위한 연금’보다 ‘연금을 위한 정치’를 다시 고민해보기 바란다. 그게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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