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트랜스휴먼" SF의 옷을 입다

머니투데이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2017.04.29 03:25

<2> 트랜스휴먼이 만들어지다

그림1. 19세기 말에 케이프타운에서 카이로까지 뻗어있는 영국제국주의의 영향력을 풍자한 그림. '펀치' 1892년.

윈우드 윌리엄 리드(Winwood William Reade, 1838-1875)는 여러 가지 면에서 19세기 빅토리아 시기의 전형적인 영국인이었다. 스코틀랜드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하는 데 실패한 뒤에, 아프리카를 탐험하기로 하고 아프리카 탐사에 나섰다.

당시 아프리카 탐험은 과학과 영국의 제국주의가 만나는 접점이었다. 여러 과학 단체들과 영국의 정부는 이런 탐험을 지원했다. 약간의 지원을 받은 리드는 1861년에 서아프리카를 탐험하면서 고릴라의 습관과 식인종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됐고, 이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이러던 중에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을 접했다. 큰 감명을 받은 리드는 바로 다윈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리드와 다윈의 교류는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됐다. 리드는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아니라고 할 때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긍정을 할 때는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거린다는 관찰 등을 다윈에게 보고했고, 다윈은 리드의 이런 관찰을 '종의 기원'의 후속작인 '인간의 유래'에서 언급했다.

반면에 리드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의 순교'(The Martyrdom of Man, 1872)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리드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다윈의 '종의 기원'만이 아니라 인간의 진화를 다룬 '인간의 유래'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의 마지막 문단에서 인간 정신의 신적인 고귀함과 인간 육체의 동물적인 비천함을 비교했는데, 리드의 소설에서는 바로 이런 정신과 육체의 대조가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는 하등 동물에 속한다. 우리의 정신은 그것을 넘어 자랐고 육체를 경멸조로 바라본다 ('인간의 순교')."

그런데 다윈의 마지막 문단은 리드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인간이 과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가 동물적인 족쇄에서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리드는 "우리가 지금 추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과학(Science)이 육체를 변형시키는 시간이 곧 올 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미래가 되면 인류가 하나의 신념과 욕망을 가지게 되고, 질병과 죄악이 소멸되며, 천재성과 사랑이 완벽해질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미래에는 인간이 무한히 살게 되며, 이를 통해 인간은 신의 창조의 영역까지 정복하게 될 것이었다.

이런 놀라운 상상을 담고 있는 리드의 '인간의 순교'는 출간 당시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이 책을 내고 3년 뒤에 아프리카 탐험에서 얻은 병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렇지만 열정적인 독자 몇몇이 리드의 소설에 열광했다. 그중 한 명이 '우주전쟁'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의 소설로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아버지'란 칭호를 얻은 H.G. 웰스(1866-1946)였다.

웰스는 미래에 인간이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리드의 소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미래의 발견"("The Discovery of the Future", 1902)이라는 에세이에서 인류가 진화를 계속해서 미래에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웰스에게 진화론이라는 과학은 인간의 미래가 필연적으로 달라질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지금의 인간이 최종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미래에 대한 과학적 발견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이는 가장 감당할 수 없고, 가장 심란한 사실"이라고 하면서, "적어도 내게 인류 다음에 무엇이 오는가라는 문제는 지구상의 모든 문제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흥미롭고 가장 풀기 힘든 문제"라고 적고 있다. 지금의 용어로 "인간 이후"의 문제, 즉 트랜스휴먼(trans-human)의 문제는 웰스에게 "가장 심란했고" 또 "가장 흥미롭고 풀기 힘들었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 스테이플던.

미래의 인간이 어떤 모습일 것인가? 과학 소설의 대가인 웰스도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상은 웰스를 계승한 차세대 과학소설에서 펼쳐졌다. 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자 올라프 스테이플던(Olaf Stapledon, 1886-1950)은 '마지막 그리고 첫 번째 인류'(Last and First Men, 1930)라는 소설에서 인류가 앞으로 20억 년 동안 18가지 다른 단계를 거치면서 진화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지금의 인류는 원자폭탄에 의한 살상으로 거의 멸망하고 그 뒤에 두 번째 인류가 나타나는데, 이 두 번째 인류는 지금보다 모든 몸집이 훨씬 더 커진 인류이다. 두 번째 인류는 화성인과의 전쟁을 겪으면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이후 몸집이 절반 만한 세 번째 인류가 등장한다. 그리고 거대한 두뇌를 가진 네 번째 인류,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조인간인 다섯 번째 인류가 이어진다. 그 뒤에 인류는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기도 했다가, 6개의 손가락이 안테나로 변했다가, 수성에서도 살 수 있게 됐다가, 천왕성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태를 거듭한다. 고도의 문명을 발전시켰음에도 인류는 식인종의 습관을 다시 보이기도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태양계가 멸망하며 인류가 태양계에서 살아남는 가능성이 소멸되고, 인류는 은하계의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진화를 시작하기 위해서 바이러스의 형태로 퍼져 나가는 결정을 내린다.


웰스가 지적한 대로 "지금의 인간이 최종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철학자 스테이플던의 소설적 상상력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 실험에 몰두하던 엘리트 과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집단유전학의 기초를 닦은 유전학자 J. B. S. 홀데인(1892-1964)은 과학이 산업과 의학에의 응용에서 벗어나서 가족, 국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인 마르크스주의자였는데, 1927년에 쓴 "마지막 판단, 미래 인류에 대한 과학자의 비전"("Last Judgment, a Scientist’s Vision of the Future of Man")이라는 글에서 생물학자로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상상을 펼쳤다.

홀데인은 앞으로도 인류가 수백만 년을 더 진화하면서 살아남을 것인데, 이때가 되면 인간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의 힘을 이겨내서 더없이 행복하고, 모든 인간이 개인의 성취를 달성하는 일을 즐기면서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수명은 3000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홀데인은 먼 미래에는 이빨이 모두 없어진다는 점만을 빼면 인간의 외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2013년에 영국의 한 생물학자는 인간이 몇백 만년 뒤에는 이빨 대신에 새 같은 부리를 갖고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빨은 오래전에는 유용했지만, 지금은 더는 인간에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홀데인의 친구이자 전도유망한 결정학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J. D. 버날(1901-1971)도 비슷한 시기에 미래의 인류에 대해 상상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교수로 화려한 경력을 막 시작하던 시점에 상상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를 넘나드는 '세계, 육체, 악마'(The World, the Flesh, and the Devil, 1929)라는 소설을 썼다.

여기에서 그는 현대 과학의 발전이 세상, 육체, 정신(악마)을 정복하고 있으며, 이런 발전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지가 지금 인류의 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류가 새로운 인류의 가능성을 회피할 수도 있고, 반면에 이런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이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지금부터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고 보았다.

버날은 미래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도 제시했다. 미래 세상에서는 인간은 인공 자궁을 통해 자식을 만들기 때문에 생식을 위한 남녀의 결혼이 사라지고, 인간과 기계의 인터페이스가 가능해져서 인간의 정신이 기계를 통해 하나로 모여 세계정신을 이루었다. 궁극적으로는 육체가 불필요해지며, 육체는 죽어도 기계와 접합된 정신은 영원히 존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불멸의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었다.

버날의 뇌-기계 인터페이스, 인간의 사이보그화, 인공자궁과 인공생명, 정신의 불멸 등은 트랜스휴머니즘 사상의 원조로 평가된다. 버날은 트랜스휴먼,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 단어는 버날, 홀데인과 가까웠고 유네스코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 1887-1975)가 최초로 사용했다.
그림5. 홀데인과 줄리안 헉슬리 (1914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찍은 사진).

1920년대의 급진적 과학자 홀데인, 버날이 상상한 트랜스휴머니즘과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트랜스휴머니즘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이들은 모두 인간이 인간의 육체를 넘어서고 초월하는 미래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차이점도 존재한다.

1920년대의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간 정신의 고상함에 대비되는 인간 육체의 저열함을 지적하고, 인간의 육체가 달라지고 극복이 되는 미래를 생각했다. 이들에게는 인간의 고귀한 정신은 미래에도 그대로일 것이었다. 반면에 지금의 트랜스휴머니즘에서는 인간의 정신도 극복하고 초월해야 할 대상이다. 인간이 육체를 초월하기 이전에, 기계가 인간 정신을 추월해버린다는 것이다.

스테이플던이 상상했듯이 인간이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진화해서 기계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을 갖게 되면서 인간 지능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 1920년대에 인간의 미래를 상상했던 과학자들은 컴퓨터와 '인공 지능'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미래를 생각했다. 20세기 중엽에 컴퓨터가 만들어지고, 초보적이지만 컴퓨터가 '지능'이라는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뒤로 인간의 진화 전에 기계의 진화가 먼저 훨씬 더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나왔다. 낙관론은 비관론과 섞여버리고, 인류의 미래는 다시 불투명해져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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