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기춘의 '헛웃음'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17.04.24 16:00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법정에서 가끔 ‘헛웃음’을 짓는다. 증인들이 김 전 실장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진술하면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는 식이다. 그의 발언을 곱씹어보면 어이가 없을 만도 하다.

김 전 실장은 자신이 성실한 공무원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20일 5회 공판에서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반대 등 북한의 선전·선동에 동조하거나 온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애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애국 안 하는 사람들’ 몫(지원 자금)을 덜어 ‘애국자’들에게 줬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는 논리로 발전했다. 실제 김 전 실장 쪽 변호인들도 그렇게 변론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정부 비판적인 작품을 만드는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에게 지원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 정부를 처벌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문제는 무어 감독은 정부 지원금 없이 작품을 만들 여건이 되지만, 문제의 명단에 오른 문화인 상당수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극화가 심한 문화계에서 정부 지원금은 ‘생명줄’이었고, 블랙리스트는 ‘살생부’나 마찬가지였다. 리스트에 ‘배제 대상’을 적어나간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통스러웠다”며 법정에서 사죄했다.


공무원들은 특정 이슈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는지는 북한에 동조하는지 여부와 분명히 다른 문제라는 점도 인식하고 있었다. 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법정에서 “아무리 정부에 비판적이라고 해도 범죄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런 명단을 만든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특정 자료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판단을 요구해서 그 결과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죄책감에 결국 사직했다고 털어놨다.

블랙리스트가 이념과 사상을 잣대로 문화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당한 정책이었는지, 아니면 특정인들을 탄압한 불법 행위였는지는 법원에서 가려질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김 전 실장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이 헌법재판소에 나와 내놓은 질문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가 그렇게 정당한 일이었다면, 왜 진작 ‘내가 했다’고 나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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