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학대' 방관한 원영이 친부…징역 17년형 적정했나

뉴스1 제공  | 2017.04.23 07:35

"아동학대 방치 행위도 범죄로 규정해 처벌해야"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평택시립추모관에서 계모에게 학대받은 후 암매장 된 신원영(7)군의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여섯 살 어린 원영이를 추운 겨울 난방도 되지 않는 화장실에 감금해 수시로 폭행하고 락스를 들이 붓는 등 고문에 가까운 계모의 학대행위를 수수방관한 친부에게 징역 17년형이 선고됐다.

새 아내의 눈치를 살피느라 자신의 친자식에 대한 끔직한 학대를 지켜보기만 했던 아버지에게 징역 17년형은 과연 적정한 형량일까?

최근 법원은 과거 아동학대 범죄 처벌에 대한 온정주의에서 벗어나 아동학대범들에게 높은 형을 선고하고 있다.

하지만 원영이 사건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시민들과 아동학대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시민단체 등에서는 아직도 우리 법원이 아동학대 범죄 처벌에 미온적이고 관련법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아동학대로 아이가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직접 학대를 하지 않았더라도 사망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학대 방조자도 엄벌에 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법리에 충실한 측에서는 '책임'을 엄격히 따져 이에 대한 죄책을 묻는 법원에서는 방조했다는 이유만으로 직접 학대를 한 가해자와 동일한 수준의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전통적인 형사법의 법리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학대를 방임한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책임 범위를 넘어서서 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과 '법이론'이 어긋나는 지점이다.

◇ 난방 안 되는 화장실 감금·폭행 알면서도 수수방관…"살인 고의 인정돼"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우리의 가부장제는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또 체벌을 훈육의 일환으로 이해한다.

추운 겨울 여섯살 어린 원영이를 속옷만 입혀 난방이 되지 않는 화장실에 감금하고 하루 1~2끼의 식사만 제공했던 원영이 계모도 법정에서 학대 이유를 묻는 판사에게 "버릇을 고치기 위해 때렸다"고 답했다. 계모가 말한 원영이의 버릇은 여섯 살 아이에게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오줌싸는 버릇'이었다. 가해자 시각에서는 학대가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원영이 친부 신모씨(39)는 이런 학대행위를 보고도 막지 않고 원영이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아동학대 행위를 들킬까봐 구호조치 없이 방치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평택 실종아동 신원영군’ 사건의 친부 신모씨(38)가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의 한 야산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친부 신씨는 계모가 자신과 다투다 화가 나면 원영이를 무차별 폭행해도 가만 지켜보기만 했다. 무차별 폭행으로 머리가 찢어진 원영이의 상처 부위에 계모가 락스를 들이붓는 엽기 행각을 했는데도 신씨는 적극적으로 나서 원영이를 보호하지 않았다.

1심 법정에서 원영이에 대한 구호활동을 했는지 묻는 판사의 질문에 원영이 친부 신씨는 "샤워기로 물을 뿌려 락스를 닦아냈다"며 자신이 구호조치를 했다는 취지의 항변을 했었다.

원영이 사건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20년 신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부싸움으로 인한 정서적 학대 부분도 유죄로 인정해 김씨에게 징역 27년, 신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하며 형을 높였다.


지난 13일 대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27년, 신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친부가 계모의 학대를 묵인해 결국 기아와 탈진상태에서 아이가 사망하게 했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아동학대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범죄를 엄벌에 처해야 양육자로서의 책임 의식이 보다 강화되고, 가정 내 다른 성인이 학대의 방조자나 조력자가 아닌 피해아동의 보호자 역할을 함으로써 아동학대를 방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짚었다.

원영이 친부 신씨에 대한 형량은 과거 아동학대의 주가해자에게 선고된 형량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2011년 의붓딸을 살해한 울산계모가 살인 혐의로 징역 18년형을 선고 받았고, 칠곡 계모 사건은 상해치사죄가 적용돼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이는 과거 우리 법원이 아동학대 범죄를 가정 내 문제로 보고 다른 범죄에 비해 온정적 처벌을 했던 결과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직접적 학대행위 안해도 학대 방관 책임 묻는 장치 마련해야…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아동학대 사건 가운데 가정 내 아동학대를 방관하는 친부모를 비교적 중형인 실형을 선고한 사례는 2014년 울산계모 사건이 최초다. 이전에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해도 결국 집행을 유예하는 추세였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아이가 사망에 이르도록 방치하거나 아이가 중대한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방임하거나 방치한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영국은 지난 2004년 '범죄피해자법'을 만들어 아동의 사망을 야기한 행위뿐만 아니라 방치한 행위도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또 아이가 중대한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가족구성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항도 만들었다.

울산계모 사건이나 원영이 사건의 경우 피해 아동의 사망이라는 참혹한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두 비정한 친아버지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심한 학대에도 아이가 사망하지 않은 경우라면 학대를 방임하는 친부나 친모에게 엄한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조항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아이들은 자신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발고할 능력이 없다. 이 때문에 몇달씩 아동 학대가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이가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년 동안 학대행위가 이어지기도 한다. 한 가정에 있으면서 몇 달 몇 년 동안 아이를 학대상태에 방치한 책임은 도의적으로나 법적으로 모두 가볍지 않다.

학대를 방관하는 사람이 친권자일 경우라면 자녀에 대한 보호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계모나 계부가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것을 묵인하고 방치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은 더더욱 크다.

전문가들은 직접 아동학대를 하지 않고 방임해도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학대 받는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제언했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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