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당시 비서실장)가 결의안 표결에 앞서 북한의 의견을 물어본 뒤 기권 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 측이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적극 부인하며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21일 송 전 장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서 만든 메모'라며 당시 정부가 표결에 앞서 확인한 북한의 입장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박 문건을 공개,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에 양측의 주장을 시간 순서에 따라 짚어봤다.
◇11월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서 첫 언급=남북은 2007년 10월4일 '10·4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에 합의했다. 한 달 뒤인 11월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남북은 합의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서울에서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했다.
남북총리회담이 열리고 있던 15일, 매주 목요일마다 개최되던 정부 안보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유엔 대북인권결의안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됐다. 2006년 10월9일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한 후 한 달 뒤인 11월16일 정부가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 결정을 내린 지 약 1년 만이었다.
문 후보 측에 따르면 이날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백종천 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들은 결의안 기권 의견을 냈다. 북한 측 인사들이 서울에 와 있는 시점에 찬성 의견을 던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홀로 찬성 의견을 강경하게 고수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회의가 종료됐다.
◇11월16일, 노 대통령 '기권' 입장 정했나=다음날인 16일,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의 요청으로 노무현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렸다. 백 실장, 이 장관, 송 장관 등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문 후보 측은 이 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최종 입장이 '기권'으로 정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 후보는 21일 기자들과 만나 "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기권 방침이 결정됐다. 대통령기록물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법적 판단이 내려지면 언제든 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기권 방침이 결정됐다는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16일 회의에서 최종 입장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자신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참여정부가 11월18일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에 의견을 묻자'고 결정, 북한의 입장을 물어본 뒤 기권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11월18일, 북한 입장 확인키로=11월18일 또 한 번 회의가 열린다. 정부 입장(기권)이 결정된 상태에서 송 장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형식적 회의였다는 게 문 후보 측 설명이다. 홍익표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송 전 장관이 계속 반발하니 노 전 대통령이 한 번 더 무마하는 차원에서 관계 장관끼리 논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이 회의와 관련, 지난 2월9일 JTBC '썰전'에 출연해 "송 전 장관이 다시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찬성에 대해 북한도 반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그렇다면 확인해보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의 말처럼 북한이 반발하지 않을 경우 결의안에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문 후보는 "그래서 국정원이 갖고 있는 방법으로 확인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며 "국정원의 답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반발이 심할 것 같고 자칫하면 후속 회담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기권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에서 북측의 입장을 알아보기로 결정됐다는 진술은 송 전 장관의 회고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송 전 장관은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에 의견을 묻자'고 제안했고 다른 세 사람도 그 방법에 찬동했다. (중략) 논란이 오고간 후 문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고 적었다.
송 전 장관은 이 문건이 김만복 전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내용을 싱가포르에 있던 백 실장에게 전달한 뒤 노 전 대통령을 통해 자신에게 전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일로 그쪽 뜻을 물어보면 북한에 칼자루를 쥐여주고 우리가 칼끝을 쥐는 셈이 된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홍 대변인은 "16일 기권 결정을 하고 나서 우리 입장을 북한에 통보한 것"이라며 "통보할 당시 '찬성' 혹은 '기권'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우리의 주권적 상황이기에 우리가 결정하겠다'는 내용을 북측에 문서상으로 알려줬다"고 반박했다.
홍 대변인은 송 전 장관이 '문 후보가 남북 경로로 확인해 보자고 결론내렸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당시 송 전 장관도 뉴욕에서 북한의 반응을 알아봤다고 했는데 본인이 한 것만 동향 파악이고 남이 한 것은 '물어본 것'이냐"며 "국정원을 통해 정보를 얻은 것은 남북관계 관리 차원에서 통일부, 외교부, 국정원이 해오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문 후보도 이날 "송 전 장관에게 책임을 묻겠다.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 통보해 주는 차원이지, 북한에 그 방침에 대해 물어본 바 없고 물어볼 이유도 없다"며 "지난 대선때 NLL(북방한계선) 논란과 같은 제2의 북풍공작으로 선거를 좌우하려는 비열한 색깔론"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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